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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케이바이블 온라인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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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몸과 마음의 문제로 교회에 출석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인터넷 온라인 교회입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24 May 2026 13:44: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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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케이바이블 온라인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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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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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부딪히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amp;lsquo;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한 것&amp;rsquo;입니다. 주권과 선택,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가르침은 오랫동안 교회사에 격렬한 논쟁이 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완전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는 무한하고, 하나님은 영원무궁하시다는 점에서 주님의 주권 역시 무제한입니다. [&lt;b&gt;그분께 지으심을 받아 그분께서 통치하시는 모든 곳에 있는 주의 모든 만물들아, [주]를 찬송하라. 오 내 혼아, [주]를 찬송하라.&lt;/b&gt;](시103:22). 주님이 지으시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주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방관자가 아니십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아주 경미한 사건들 하나까지도 다 눈여겨보시고 간섭하고 계십니다. 하늘의 별들의 이름을 다 부르시는 분이시며, 공중의 새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들의 백합화에게는 입을 것을 주시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살펴보고 계시며, 기록하고 계십니다.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을 병에 담으시고,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다 세시고, 표시하시며, 머리카락까지 세신다는 사실을 볼 때 주님이 관여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세상은 정치적 격변기를 따라 어떤 나라는 망하기도 하고, 흥하기도 하지만 주님은 세상의 모든 왕국의 흥망성쇠를 친히 주관하고 계십니다. 최초의 세계 제국의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에게 주님은 주님의 주권을 가르치시고자 한 가지 꿈을 주셨습니다. [&lt;b&gt;이 일은 순찰자들의 명령에 따른 것이요, /이같이/ 요구한 것은 거룩한 자들의 말에 따른 것이니 그 목적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들의 왕국에서 다스리시고 자기 뜻대로 그 /왕국/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사람들 중에서 가장 비천한 자를 그 /왕국/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산 자들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lt;/b&gt;](단4:17). 국민 투표로 당선된 줄 알았던 사람도 사실은 주님이 자신에게 권세를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은 권세를 하루아침에 회수하실 수도 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렇다면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주권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의 자유 의지인가? 란 진지한 고민과 질문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주권이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우리 집 개나 고양이를 묶어 둘 수도 있고 풀어 줄 수도 있고, 먹이를 하루에 두 번만 줄 수도 있고 세 번을 줄 수도 있고 아예 며칠을 굶길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권한입니다. 그런 권한을 갖는 정당한 근거는 내가 주인이란 점입니다. 물론 오늘날 동물 보호론자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간이 동물에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점점 줄어들고 제한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본래 인간은 동물을 마음대로 잡을 수도 있고, 길들일 수도 있고, 키울 수도 있고, 양식으로 잡아먹을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amp;ldquo;우리가 인간&amp;rdquo;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권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주권 국가임을 선포합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정한 영토, 영해, 영공입니다. 지구상의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주권 국가임을 선포합니다. 주권이란 자주적으로, 독립적으로 힘과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의 간섭이나 허가를 받지 않고 자율적인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행사하실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성경에 '주권'이란 말은 전혀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가르침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주님을 만유의 창조주요, 하늘과 땅의 주인으로서 인정하는 것이 바로 주권 신앙입니다. 주권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하는 가장 진실되고 참된 신앙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이나 자신의 뜻대로, 원하시는 대로, 기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있으실 뿐만 아니라 행하실 수 있는 주권이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의 고난이 주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정당하게 변론을 해서 그 이유를 따지고 싶었습니다. &amp;ldquo;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실 수는 없다!&amp;rdquo;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 앞에 섰을 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lt;b&gt;주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사오며 어떤 생각도 주께 알리지 아니할 수 없음을 내가 아오니&lt;/b&gt;』(욥42:2). 이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대한 고백일 뿐 아니라 주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행하실 수 있다는 &amp;lsquo;주권&amp;rsquo;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인정, 순복이 바로 주권 신앙의 핵심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대하셔도 &amp;ldquo;제게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amp;rdquo;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나를 오늘 죽이실 수도 있고, 파산을 선고하실 수도 있습니다. 질병을 주실 수도 있고, 권세를 주실 수도 있습니다. 마땅히 죽어 마땅한 죄인인데 오래 참으실 수도 있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성도를 데려 가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amp;ldquo;세상에 이럴 수가&amp;rdquo;라고 할 만한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우리는 주님께 &amp;ldquo;&lt;b&gt;주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사오며...&lt;/b&gt;&amp;rdquo;라고 고백하는 것이 전부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우리는 돈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살 수 없고, 능력이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할 권한이 없습니다. 현대 사회는 인간의 주권을 점점 줄여 나가는 추세입니다. 자유를 보장하는 듯하지만 실제로 자유는 점점 제한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디서나 마음대로 짐승을 잡을 수 있었고, 어디서나 낚시를 할 수 있었고, 어디서나 나무를 벨 수 있었지만 오늘날은 법을 정해서 제한을 합니다. 법과 사회 규범을 강화할수록 인간의 자유와 주권은 점점 축소됩니다. 능력의 부족, 지혜의 부족으로 인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은 너무나 많아서 법이 허용한다 해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미 언급한 대로 &amp;ldquo;주권&amp;rdquo;이란 마음대로 뜻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왕은 왕의 권한이 있습니다. 장관은 장관의 권한이 있습니다. 기업체의 사장은 사장의 권한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장의 권한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 지위에 맞는 고유 권한이 있습니다. 비록 이들의 권한은 법과 규칙의 테두리 내에서의 권한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서로 그 권한을 인정하고, 그 권한에 순종합니다. 그런 권한이 없다면 그는 왕도 사장도 교장도 아닙니다. 그 권한을 사용할 수 없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왕권에 도전하면 반역자가 됩니다. 사장에게 도전하면 그는 해고당합니다. 경찰이 세우면 서야 합니다. 우리는 차나 사람을 임의로 세울 권한이 없지만 경찰은 그런 권한이 있습니다. 왜 세웠느냐고 물으면 그는 경찰이기 때문이라고 하면 그만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모든 성도들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한 가지 신앙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amp;lsquo;주권 신앙&amp;rsquo;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익으로 인해 주님을 믿을 수도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지만 주님께서 주님이 되시기 때문에 복종하는 일은 더욱 성숙된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이 주(主)가 되신다는 한 가지 사실이 모든 이유에 대한 해답이 되고, 결론이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주권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최고의 주권자는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위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나 마음대로,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실 수 있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대적자가 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한 자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대적자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믿고,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인식의 기본입니다. [&lt;b&gt;/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줄을 알지어다. 내가 이교도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고 땅에서 높임을 받으리로다.&lt;/b&gt;](시46:10). 사람이 자신을 만물의 척도요, 중심으로 놓을 때 하나님의 주권을 짓밟고, 하나님을 입헌 군주국의 상징적인 왕처럼 모셔 두는 정도의 예의만 표시합니다. 이것은 인본주의적 종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전적으로 자신의 뜻대로 하실 수 있으신 데 이유는 &amp;ldquo;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amp;rdquo;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눈치를 보시거나, 허락을 구하거나, 이해와 동의를 구할 필요가 전혀 없으신 데 이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권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먼저 계신 분이 없고, 하나님 이후에 오실 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누구에게 상의할 필요가 없으십니다. 만약 전임자가 있다면 그것을 계승해야 하고, 후임자가 있다면 무엇인가를 남겨 두어야 하겠지만 하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시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으십니다. [&lt;b&gt;이스라엘의 왕인 [주] 곧 이스라엘의 구속자(救贖者)인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lt;/b&gt;](사44:6). 주님은 전능하시므로 누구에게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으시고, 주님은 전지하시기에 누구에게 조언이나 지혜를 구할 필요가 없으시며, 주님은 어디에나 계시기에 누구에게 부탁을 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나님의 주권이란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통치권, 주관자가 누구신가?에 대한 권위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amp;ldquo;오늘날, 누가 세상사를 주관하고 있는가? 하나님인가, 사탄인가? 인간인가? 아니면 저절로 흘러가는 것입니까?&amp;rdquo; 신자들은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절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만 주님이 어느 정도까지, 얼마만큼 이 세상을 장악하고 다스리는가?에 대한 개념이 불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인정하면서도 세상에 만연하는 타락, 악, 범죄, 넘치는 불법으로 인해 주님의 주권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의심합니다. 쉽게 사탄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있고, 인간의 책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인정이 부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낮을 만드신 분이 밤을 만드신 것처럼 주님은 악을 창조하셨으며, 이 세상에 범람하는 악은 주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lt;b&gt;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 재앙(evil)도 창조하나니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lt;/b&gt;](사45:7). 주님은 스스로 &amp;ldquo;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amp;rdquo;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악을 창조하셨느냐?고 주님께 불평하거나 따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이 하신 일에 대해서 동의나 승인을 구할 이유가 없으십니다. 재가를 받아야 할 이유도 없고, 우리의 이해를 구하셔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주님이 무엇을 만드시건 그것은 주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모든 것은 주님을 위해 창조되었고, 주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골1:16). 이해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분명한 사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lt;b&gt;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이는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이요, 또 모든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음이니이다, 하더라.&lt;/b&gt;](계4:11). 이런 사실을 마음으로부터 깊이 인정하는 것이 주권 신앙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나를 위해 만드셨다면 인간에게 불필요한 것들은 만들지 말았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나를 위해 만드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창조하셨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시대는 인권이 강조되고 자아 중심적인 사고가 온 세상을 휩쓸고 있습니다.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인본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물질주의로 점점 정신은 타락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지성은 실용주의와 합리주의로 교육을 받고, 마음은 쾌락과 물질(돈)과 자기를 사랑하는 것으로 단련되고, 의지는 인권과 자기 권리를 지키는데 집중합니다.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진정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그분께 돌려드리는 데서부터 죄와 세상을 이기는 경건의 능력이 주어집니다. 이 시대는 인본주의, 자본주의 시대인지라 `인간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하나님을 지나치게 경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신본주의를 지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무궁하시며, 우리의 속 중심까지 다 살피시므로 이 세상에 아무리 작은 일까지도 주님의 주권을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성도들조차 주님은 무엇이나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불쾌하게 여기거나 주님의 권한이&amp;nbsp;좀 제한되었으면 하는 생각할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lt;b&gt;내가 처음부터 결말을 밝히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들을 옛적부터 밝히 알리고 이르기를, 나의 계획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기뻐하는 일을 모두 이루리라, 하였노라.&lt;/b&gt;](사46:10). 주님은 자신이 기뻐하시는 대로 일을 다 이루십니다. [&lt;b&gt;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들에 계시며 무엇이든지 친히 기뻐하시는 일을 다 행하셨나이다.&lt;/b&gt;](시115:3). 이것이 주님의 주권이십니다. 주님은 무엇을 하셔도 상관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도자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주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는 세상! 이것이 바로 신본(新本) 신앙이요, 주권(主權) 신앙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어느 누가 주님이 행하시는 일에 대해서 하라, 하지 말라 말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lt;b&gt;보라, 그분께서 가져가시면 누가 그분을 막을 수 있겠느냐? 누가 그분께 무엇을 하시나이까 말하겠느냐?&lt;/b&gt;](욥9:12). 전도서 기자 역시 동일한 말씀을 했습니다. [&lt;b&gt;왕의 말씀이 있는 곳에 권능이 있나니 누가 왕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lt;/b&gt;](전8:4).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래서 누가 왕에게 &amp;ldquo;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amp;rdquo;라고 감히 토를 달 수 없습니다. 성경에 관한 마음의 의문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를 자신과 동일하게 두는데서 시작됩니다. 다니엘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lt;b&gt;/그분께서는/ 땅의 모든 거주민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 안에서든지 땅의 거주민들 가운데서든지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분의 손을 멈추게 하거나 그분께 이르기를, 당신은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lt;/b&gt;](단4:35). 다니엘은 하나님의 주권이 하늘과 땅 전체임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나 자신의 뜻대로 행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lt;b&gt;그러므로 너희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lt;/b&gt;](엡5:17) 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아들이실만하고, 완전한 뜻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롬12:2).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성경을 통해 기록해 두셨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 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행할 수 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우리는 주님이 행하시는 일이 자신에게 불리하다 해서 주님을 탓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선하시고, 완전하시기 때문에 주께서 무엇을 하신다 해도 우리는 &amp;ldquo;주님이 옳습니다!&amp;rdquo;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lt;b&gt;과연 그러하옵나이다. 아버지여, 그리하심이 아버지 보시기에 좋았나이다.&lt;/b&gt;](마11:26)라고 고백하신 것처럼 우리는 매사에 그러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해를 구하실 필요가 없고, 미리 동의를 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모두 이해하고 동의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뿐입니다. 우리는 결코 주님의 주권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침례인 요한과 같은 의인이 헤롯에게 목이 잘려 죽고, 스데반 같은 성령 충만한 전도자가 돌에 맞아 죽는 것이 주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자녀가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나거나 불행을 당할 때 &amp;ldquo;주님, 이것이 주의 뜻이니이까?&amp;rdquo;하며 울부짖을 필요가 없습니다. &amp;ldquo;제게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amp;rdquo;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은 모진 고문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당하시며 죽임을 당하시도록 정해지셨지만 &amp;ldquo;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amp;rdquo;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몸을 주님께 산 제물로 내어 드렸다면 불로 태우든지, 칼로 찌르든지 그것은 여러분의 소관이 아닙니다. 제단 위의 제물은 제사장의 손에 있는 것이지 나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주권은 헌신의 정도에 비례해서 내 안에 행사됩니다. &quot;I'm nothing&quot;을 선언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all in all)이 되시지만 내가 전부인 사람에게 하나님은 Nothing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께 바쳐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다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브라함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쳐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아들을 죽이라고 하십니까? 주님의 주권입니다. 에스겔은 아내를 빼앗겨야 했습니다. 주님은 대언자 에스겔을 위로할 믿음 좋은 아내를 두시지 않고 왜 죽이셨습니까? 주님의 주권입니다. [&lt;b&gt;사람의 아들아, 보라, 내가 한 번 쳐서 네 눈이 바라는 것을 네게서 빼앗으리니 너는 애곡하거나 울지 말고 눈물도 흘리지 말며&lt;/b&gt;](겔24:16). 에스겔은 이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내의 죽음이었습니다. [&lt;b&gt;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말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으므로 내가 명령받은 대로 아침에 행하니라.&lt;/b&gt;](겔24:18). 하나님이 내게 이러실 수가 있는가? 물론 그러실 수 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만약 어떤 사람이 주님께 대꾸하고, 이유를 대고, 따지려고 할 때 성경은 말합니다. [&lt;b&gt;화 있을진저, 자기를 만드신 이와 다투는 자여! 질그릇 조각은 땅의 질그릇 조각들과 다툴지니 진흙이 자기를 빚는 자에게, 네가 무엇을 만드느냐? 말할 수 있으며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lt;/b&gt;](사45:9).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할 때 주님은 그에게 화를 선포하십니다. 아무도 하나님과 다툴 수 없습니다. 주님이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lt;b&gt;지금까지 존재한 것에는 이미 이름이 붙어 있으며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도 알려졌나니 그가 자기보다 강하신 이와는 다투지도 못하느니라.&lt;/b&gt;](전6:10). 그러나 교만한 사람들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라 오직 인권(人權)만이 강조되고 있으며, 나의 권리를 찾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조차도 하나님께서 나의 권리를 침해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느니, 교회를 안 다니겠다느니, 기도를 안 하겠다느니 망발을 쏟아내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교회에서 주님의 권한이 성도들에게 제한을 받는 실정입니다. 주님의 일과 나의 일이 부딪히면 당연히 나의 일부터 하고 시간 나면 주의 일을 하겠다는 식입니다. 나의 이익과 교회의 이익이 부딪히면 당연히 나의 이익부터 챙기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의 정도를 넘어서 주님을 철저히 모독하는 행위이며, 주님을 짓밟는 행위입니다. 이런 신자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보십시오. 내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보십시오. 주님은 과연 나의 주인으로서, 나에 대해 전권을 행사하시도록 내 몸과 마음을 다 주님께 내어 드렸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리지 않는 성도는 결코 성령 충만이나 경건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죽음에 내어준 사람이라면 무엇이나 주님께 내어 드리는 것은 상식입니다. 이스라엘은 주님의 주권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lt;b&gt;어찌 도끼가 도끼를 가지고 찍는 자를 향하여 자기를 자랑하겠느냐? 어찌 톱이 톱을 켜는 자를 향하여 자기를 높이겠느냐? 이것은 마치 막대기가 막대기를 드는 자들을 향하여 자기를 움직이려 하며 지팡이가 마치 나무가 아닌 것처럼 자기를 들어올리려 함과 같도다.&lt;/b&gt;](사10:15). 주객전도, 본말 전도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자들의 특징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경배의 대상이신 주님보다 예배당의 건물이나 장식, 성가대, 프로그램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이나 헌금을 드리면서 드림의 주체이신 주님보다 자신의 손이나 액수에 관심이 있는 것이 다 도끼, 톱, 막대, 지팡이와 같은 것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구약의 위대한 대언자였던 이사야는 주님이 주권자란 사실을 깊이 인정했습니다. 그의 신앙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lt;b&gt;오 [주]여, 그러나 이제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우리의 토기장이시오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lt;/b&gt;](사64:8). 이사야의 신앙은 주님이 우리의 창조주시며, 아버지시란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단지 진흙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데서 비롯됩니다. 후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을 논하면서 이사야의 고백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lt;b&gt;아니라, 오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대꾸하느냐? 지어진 것이 지으신 분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하겠느냐?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 덩어리로 하나는 귀한 그릇을, 다른 하나는 천한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lt;/b&gt;](롬9:20-21).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자신의 뜻대로 행하실 권한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권한이 없겠습니까? 당연히 권한이 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때로 우리의 악함으로 인해 주님의 선함이 악하게 비치는 일이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봅시다. 마태복음 20:1-15에는 포도원에 들어간 품꾼들에게 일한 삯을 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침 일찍 포도원에 들어간 자들, 세시쯤 들어간 자들, 여섯시쯤 들어간 자들, 아홉시쯤에 들어간 자들, 열한시쯤에 들어간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청지기에게 지시하시기를, 나중 온자로부터 먼저 온 자까지 품삯을 주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품삯은 모두 한 데나리온으로 동일했습니다. 그 때 먼저 온 자들은 그 주인에 대해서 투덜대기 시작했습니다. [&lt;b&gt;그들이 그것을 받은 뒤에 그 집 주인에 대하여 투덜거리며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낮의 열기와 무거운 짐을 견딘 우리와 같게 대우하였나이다, 하거늘&lt;/b&gt;](마20:11-12). 이것이 사람들의 가치관입니다. 자신들이 받은 정당한 댓가를 생각하지 않고, 주인이 자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쓰는 일에 대해서 불평합니다.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lt;b&gt;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일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도 너와 똑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이 법에 어긋난단 말이냐? 내가 선하므로 네 눈이 악한 것이냐?&lt;/b&gt;](마20:11-15). 주님은 자신의 권한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amp;ldquo;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이 법에 어긋난단 말이냐?&amp;rdquo;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주님의 뜻대로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때로 주님의 선하심과 주님의 고유 권한에 대해 월권(越權) 행위를 자연스럽게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논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이것입니다. 죽음, 악, 고통, 죄와 같은 불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존재하게 하셨는가? 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그것들을 막을 수 있으실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가? 죄의 기원에 대한 완전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셨고, 허락하셨으며,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오기 전까지 제한적으로 활동하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주님은 죄, 불법, 죄악에 대해서 충분히 control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의 존재 자체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사탄의 존재, 죄의 존재, 어둠과 악의 권세들이 활동하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주권을 손상시키거나 제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 긍휼, 은혜,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이 더욱 빛나게 되며 때가 되어 이런 것들을 모조리 제거하심으로 주님의 능력은 더욱 영광스럽게 드러날 것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나님의 주권과 관계된 또 하나의 문제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뜻대로 한다면 우리의 의지는 무엇이 되는가? 란 논쟁이 생깁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로봇에 불과한 것인가? 연극 무대의 광대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그런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결코 충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불신의 음성은 오히려 이런 점을 부추김으로 하나님을 배척하게 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이 자유롭게 지성과 이성과 감성, 의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명하시고 계십니다. 도덕적인 선택, 선과 악을 분별하고 선택하도록 하셨습니다. 믿음과 불신, 순종과 불순종에 대한 자유를 주심으로 그 자유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은 결코 무대 위의 줄에 메인 인형들처럼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는 자유의지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이시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입니다. 철로 위에 안전하게 궤도를 잡고 달리는 열차 안이 평안하고 자유롭지만 덜컹거리고 탈선하고 속도 조절이 되지 않는 열차 안에서 평안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의 확고한 주권이 우리의 자유와 평안을 보장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간단한 예를 한 가지 들어 보겠습니다. 이곳 미국의 태평양 해변에서 멀리 극동의 부산항까지 거대한 항해선을 출발시킨다고 해 봅시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적지는 정해졌습니다. 이것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배에 탄 승객들은 쇠사슬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리 저리 다니고, 독서하고, 먹고, 잠자고, 놀고, 이야기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긴긴 시간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 동안에도 배는 예정된 항구를 향해 계속 나아갑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와 마찬가지로 인류 역사의 첫발부터 주님이 계획하신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종착역까지 쉼없이 항해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선장이 되셔서 항해를 지휘하시고, 이 항로는 누구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파도가 불고, 태풍이 몰아쳐도 주님은 그것들을 모두 다스리시며 나아가실 것입니다. 승객들 중에 난동을 부리거나 선상 반란을 꾀하는 무리가 있다 해도 역사의 배는 쉼 없이 항해합니다. 주님은 선장으로서 계속해서 상황을 통제하시며, 흐름을 장악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주권입니다. 선장이 배를 잘 통제하면 할수록 그 안의 승객들은 더 평안함과 자유를 누립니다. 선장의 지시를 따르고 순종할수록 항해는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는 이와 같은 관계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주님의 주권은 분명합니다. 주님이 정하신 항로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분을 통해 인류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받도록 정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주권입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며, 책임 역시 각자의 몫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구원에 관련된 주님의 주권을 이해하지 못하여 질문을 던질 때가 많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lt;b&gt;이뿐 아니라 리브가도 한 사람 곧 우리 조상 이삭으로 말미암아 수태하였더니 (그 자녀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하였으되 택하심에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부르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그때에 /그분께서/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셨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되 에서는 미워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lt;/b&gt;](롬9:10-14). 이런 장면을 읽을 때 하나님은 왜 태어나기도 전에 에서가 아닌 야곱을 택하셨는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에서와 야곱의 성격이나 행동이나 지적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시고 주님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셨고, 내가 야곱은 사랑하되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님의 주권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하신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11절에 있는 대로 [&lt;b&gt;...택하심에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부르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lt;/b&gt;](11)란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만약 주님의 부르심이 우리의 행위에 있다면 기독교는 행위 종교가 되었을 것입니다. 믿음과 은혜가 아니라 땀과 피의 종교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일견 세상의 진리와 이치와 모순 되어 보이고, 우리의 이성과 어긋나 보이지만 전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묻습니다. &amp;ldquo;왜 하나님은 믿는 자만 구원해 주시는가? 믿지 않고도 정직하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 많지 않는가? 행실이 엉망인 기독교인보다 단정하고 인격이 훌륭한 비 기독교인이 하늘 나라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amp;rdquo; 등에 대한 대답으로 주님은 에서가 아닌 야곱을 택하심으로 보여 주셨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우리 자신의 외모, 혈통, 인격, 학력, 재물, 권세 등에 두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이 택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시기 위해서, 자신의 언약의 말씀에 두시기 위해서 에서가 아닌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의 죄를 대속할 어린 양을 마련하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장사 지낸 바 되시고, 부활하게 하심으로 누구든지 구원을 얻도록 해 두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택하심에 따른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을 본 후에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을 통해 구원에 관련된 모든 것을 결정해 놓으셨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주권은 갈보리의 십자가를 정점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누구라도 주님께서 정하신 구원 방법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매사에, 매 순간 하나님의 주권을 전폭적으로 신뢰함으로 더욱 평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출처:&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lt;a href=&quot;https://av1611.net/254&quot;&gt;https://av1611.net/254&lt;/a&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lt;span&gt;&amp;nbsp;&lt;/span&gt;[❏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자료/기독교</category>
      <author>KWe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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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6 Jul 2021 22:02:1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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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성경에서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title>
      <link>https://kbible.tistory.com/42</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갓 거듭난 성도들에게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성경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들을 전달하기 전에 성경 자체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심어주는 일이야말로 기초를 다지는 일이요, 신앙 성장의 초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1:3에 [&lt;b&gt;기초들이 무너지면 의로운 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리요?&lt;/b&gt;]the foundations be destroyed, what can the righteous do?&amp;gt;라고 말했듯이 우리의 믿음과 실행의 초석을 확고히 하는 일이야말로 최우선적인 일입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초신자 때 성경을 읽으면 질문과 의문이 많이 생깁니다. 특히 성경이 비과학적인 것 같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심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더 큰 문제는 성경을 읽어가다가 자체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입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듣지 못할 때 성경은 믿음의 책이 아니라 의문투성이가 되고 맙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예를 들어 창세기를 읽는데 하루는 과연 지금의 24시간인가? 태양이 만들어지기 전에 어떻게 밤과 낮이 존재할 수 있는가? 노아의 방주에는 공룡이 탔는가? 가인은 누구와 결혼했는가?와 같은 질문이 쏟아집니다.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질문을 해 보았고, 또 많은 질문들을 받아 보았습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은 채 &amp;lt;믿기만 하라&amp;gt;고 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성경은 질문에 대해 답변해 줄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다 알지 못한다 해도 공부를 해서 가르쳐 주면 될 것입니다. 저도 모든 질문에 다 답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묻는 질문들에 대해서 답해 드리고자 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b&gt;1. 창세기의 하루는 지금과 동일한 24시간이었는가?&lt;/b&g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답변:Yes.&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성경은 &amp;ldquo;밤이 되고 낮이 되니&amp;rdquo;란 표현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첫째 날, 둘째 날...하며 일곱째 날까지 명명하셨습니다. [&lt;b&gt;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낮에 열두 시간이 있지 아니하냐? 사람이 만일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걸려 넘어지지 아니하고&lt;/b&gt;](요11:9). 예수 그리스도께서 낮을 12시간으로 규정하셨습니다. 그러면 밤도 열두 시간입니다. 한때 진화론과 타협하는 절충안으로 창조론적 진화론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창조 때의 하루는 몇 년일지 알지 못한다라고 했지만 성경은 분명히 하루는 24시간이며 창조는 6일 동안 있었던 일이라고 못박고 있습니다. [&lt;b&gt;이는 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주]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lt;/b&gt;](출20:11)&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b&gt;2. 태양은 4일째 만들어지는데 그 전의 3일 동안의 밤과 낮은 어떻게 존재하는가?&lt;/b&g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하나님이 &amp;ldquo;빛이 있으라&amp;rdquo; 명하셨기 때문입니다.&lt;span&gt;&amp;nbsp;&lt;/span&gt;there be light&amp;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우주에는 태양 외에도 많은 발광체가 있습니다. 심지어 태양보다 몇 백배, 몇 천배 밝은 별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태양과 별도 있기 전에 빛을 주셨습니다. 이는 요한계시록 21:23에 [&lt;b&gt;그 도시에는 해와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시를 밝혀 주고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광체(光體)이시기 때문이라.&lt;/b&gt;]는 말씀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태양이 없이 빛이 있던 날은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이 계시는 셋째 하늘에는 태양이 없지만 빛으로 충만합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바 하나님이 바로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빛이 있으라 명하시면 빛은 비취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방에서 작업을 하기 전에 먼저 전원을 켤 때, &amp;ldquo;전원을 켜라&amp;rdquo;고 말하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음성 감지 장치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음성이 발해질 때 창조 행위가 바로 이루어집니다(히11:3). 많은 사람들이 어둠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습니다. 어둠은 태양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결과입니다. [&lt;b&gt;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 재앙도 창조하나니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lt;/b&gt;](사45:7,시편 18:11참조). 지구의 자전과 공전은 4일째 이후에나 가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에서 온 지구는 모두 어둠이었습니다. 창세기 1:3에서 온 지구는 모두 빛이었습니다. 창세기 1:4에서 하나님은 어둠과 빛을 나누셨습니다. 지구의 자전은 이 때부터 가능한 것입니다. 회전을 하면 밤과 낮은 자동으로 반복되기 때문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b&gt;3.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amp;ldquo;보시기에 좋았더라&amp;rdquo;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틀째는 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lt;/b&g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답: 보시기에 좋지 않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틀 째 주님이 하신 일은 물들을 궁창 아래 위로 나누시는 일입니다. 이 물은 지구 상의 바다가 아닙니다. 궁창이 하늘이라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늘 위에 물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은 현재 천문학자들에게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이 은하계를 넘어 지구의 바닷물에 2천 만배에 달하는 물층이 존재한다는 내용이 과학 잡지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amp;ldquo;99년 1월 8일 미국 우주 항공국은 98년 발사한 스와스(SWAS) 위성을 통해 은하계의 가장 차가운 곳에서도 다량의 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미국 과학자들이 8일 밝혔다. 美매사추세츠州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센터의 게리 멜닉 연구원은 이날 텍사스州 오스틴에서 열린 미국 천문학협회 총회에서 &quot;스와스 위성은 은하계 성운에 꽤 많은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quot;고 발표했다... 스와스 위성이 가장 먼저 탐사한 오리온 성운에서 나온 이 자료는 이 성운에 지구 바닷물의 2천만배에 이르는 거대한 양의 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전에 이미 유럽의 적외선 감지 위성도 최근에 은하계에서 다량의 물이 수증기나 얼음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정보를 보내 왔는데 스와스 위성의 이번 자료는 이를 확인해주는 것이다.&amp;rdquo; (99/01/08 동아일보). 과학자들이 말한 것보다 훨씬 먼저 욥은 이 물층에 대해서 상세하게 언급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궁창 위의 물들에는 리워야단이 살고 있습니다(욥41:31-32). 이곳은 용들의 처소입니다. 둘째 하늘은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 영적 악들의 거처입니다(엡6:12-high places). 그래서, 하나님은 좋았더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우주 개발 계획은 전적으로 악한 영들의 역사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늘이 아니라 땅을 주셨고, 대기권까지가 우리의 생활 영역입니다. [&lt;b&gt;하늘과 하늘들도 [주]의 것이로되 그분께서 땅은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주셨도다.&lt;/b&gt;](시115:16).&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b&gt;4. 성경에 따르면 지구의 나이는 약 6,000년 정도라면 이 우주의 나이와 너무 틀리지 않습니까?&lt;/b&g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답: 지구의 나이는 6,000년이 아닙니다. 우주의 나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진화론이 득세하기 시작하면서 성경의 창조론은 아주 곤혹을 치르고 궁지에 몰린 것 같습니다. 반면 다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진화론의 허구성이 입증되면서 창조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창세기의 창조년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길어도 만년 이내로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지구의 연대를 말해 주지 않습니다. 6,000년이라고 하는 것은 임의의 짐작이며, 추론일 뿐입니다. 한가지 정확한 것은 지구의 나이가 태양이나 별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창세기 1:1과 1:3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논란이 되고 있는 구절이지만 성경을 믿는 초신자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 구절이 해결되면 다른 많은 의문들이 저절로 풀리게 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lt;/b&gt;](창 1:1). 이 구절과 연관된 구절은 욥기 38:4-7에 나옵니다. [&lt;b&gt;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明哲)이 있거든 밝히 고하라. 누가 그 치수들을 정하였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팽팽히 쳤느냐? 그 기초들을 어디에 고정하였느냐? 그 모퉁이돌을 누가 놓았느냐?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lt;/b&gt;](욥38:4-7). 이 때 지은 땅은 창세기 1:2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지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지음받기 전에 지구를&lt;b&gt;&lt;span&gt;&amp;nbsp;&lt;/span&gt;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 소리를 지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45:18에는 완벽한 참조 구절이 나옵니다. [이는 하늘들을 창조하신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친히 땅을 조성하고 만들고 견고하게 하였으되 땅을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고 사람이 거하도록 조성하였느니라. 나는 [주]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lt;/b&gt;](사45:18). 여기서 &amp;ldquo;헛되이&amp;rdquo;(in vain)란 말 창세기 1:2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헛되이 창조하지 않는 땅이 1:2에서 헛되이 있다면 거기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후에 루시퍼에게 이 땅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에스겔 28:13-14은 루시퍼가 바로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었다고 말합니다. 루시퍼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땅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던 자였습니다. 욥기38:4,7에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기뻐 소리치는 천사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루시퍼는 절대 천사가 아닙니다. 천사장도 아닙니다. 그는 그룹이었습니다. 이런 루시퍼에게 심판이 임했습니다. 이사야 14:12-15에 심판이 임한 이유와 그의 죄악이 나옵니다. 이사야 14:12을 보십시오.&lt;span&gt;&amp;nbsp;&lt;/span&gt;&lt;b&gt;&amp;ldquo;How art thou fallen from heaven, O Lucifer, son of the morning! how art thou cut down to the ground, which didst weaken the nations!&quot;&lt;/b&gt;&lt;span&gt;&amp;nbsp;&lt;/span&gt;루시퍼는 하나님께 받은 &quot;자신의 보좌&quot;(throne)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사14:13).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죄는 아담이 아니라 아담이 지음받기도 전에 이미 루시퍼에게서 발견됩니다. [&lt;b&gt;Thou wast perfect in thy ways from the day that thou wast created, till iniquity was found IN THEE.&lt;/b&gt;](겔28:15). 모든 범죄에는 심판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범죄를 결코 묵과하시지 않습니다. 창세기 1:1에서 창조된 하늘과 땅은 1:2에서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3:3-7은 당시의 물 심판에 대해서 언급해 줍니다. 성경은 [그 때의 세상],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 앞으로 다가 올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언급해 줍니다. 이전 세상의 왕은 루시퍼였고, 그의 왕국은 심판으로 끝이 났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나님은 창세기 1:2 후반절부터 물로 뒤덮인 지구에 성령의 운행하심으로 다시 창조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lt;b&gt;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 운행하시니라.&lt;/b&gt;] 시편 기자는 이 때 성령께서 하신 역사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lt;b&gt;주께서 주의 영을 보내시매 그것들이&amp;lt;모든 살아 있는 창조물들&amp;gt; 창조되었사온즉 주께서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lt;/b&gt;](시104:30). 성경을 지지하고 옹호한다는 과학자들까지도 이 사실에 대해서 무지를 드러냅니다. 물은 언제, 몇 일째 창조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혼비백산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는 출애굽기 20:11입니다. [&lt;b&gt;이는 엿새동안 주가 하늘&lt;/b&gt;(창세기 1:1의 하늘이 아니라 창세기 1:8의 하늘이다.)&lt;b&gt;과 땅&lt;/b&gt;(창세기 1:1의 땅이 아니라 창세기 1:10의 땅이다)&lt;b&gt;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lt;/b&gt;(하늘 안에 있는 것--해, 달, 별; 땅안에 있는 것--동식물들; 바다 안에 있는 것들--어류)&lt;b&gt;을 만들고...&lt;/b&gt;](출20:11). 여기에도 물을 만드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물은 엿새 동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전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조 과학회의 헨리 모리스 박사와 그의 추종자들은 여기서 걸려 넘어졌습니다. 지구의 나이는 6,000년이 아니지만 인류의 역사는 6,000년 정도가 맞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b&gt;5.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했는데 이 때 지구상에 다른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창4:14).&lt;/b&g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답: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는 농사를 짓고 양을 칠 정도의 성인이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문제는 이들의 나이가 몇세 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100세가 넘어서 이런 일이 터졌는지 30-40세 정도에 살인 사건이 났는지 성경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담과 이브는 창세기 1:28의 명령에 따라 생육하고 번성하였으며 많은 자식들을 낳았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이들 둘을 기록했을 뿐입니다. 통계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아담이 살아 있을 동안 지구의 인구는 2천만명이 넘었을 것이며, 아담과 셋이 죽기 전까지 지구의 인구는 최소한 1억 3,600만을 넘었을 것입니다. 가인과 결혼한 여자는 조카였거나 동생이었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여기에 대한 규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인이 보복을 두려워했다는 것은 아벨의 살인자로 자신이 밝혀질 경우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만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이 부분에 대해 오해한 사람들이 아담 이전에 다른 족속이 살고 있었다는 주장을 합니다. 아담은 성경이 말하는대로 첫 번째 사람입니다(고전15:45). 이브는 모든 산 자의 어미입니다(창3:20). 이 두 구절은 아담 이전의 다른 사람이 존재했다는 주장들이 비성경적인 상상의 소산물임을 밝혀 줍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b&gt;6. 하나님께서 동물, 식물 등 모든 것들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는데, 인간은 다양하게 만드시지 않으셨는가요?&lt;/b&g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답: 인간은 한 종류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늘날 다양한 피부색의 인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양한 인종을 창조하시지 않았는가? 아니면 아담, 노아의 단일 후손이 이렇게 다양하고 서로 다른 인종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종류에 따라(after his kind) 지으셨지만, 인간은 &amp;ldquo;하나님의 형상대로&amp;rdquo; 지으셨습니다. 고로 인간은 다른 종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다른 종류가 있다면 이는 인간이 아니라 변종입니다. 이는 창세기 6장에 나오며, 앞으로 조만간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현재의 모든 인류는 한 피입니다. [또 그분께서 인류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로 만드사 온 지면에 거하게 하시고 미리 작정하신 때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행17:26).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새로운 한 무리를 이루게 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피부색이 다양하고 다른 체형을 유지하는 이유는 환경, 삶의 습관, 음식등으로 쉽게 설명됩니다. 작은 수족관에서 자란 잉어는 3-4인치 밖에 자라지 못하지만 템즈강에 풀어 놓으면 14-5 파운드의 대형 잉어로 체형이 바뀝니다. 미국에서 자라나는 떡갈 나무와 삼나무는 매우 큽니다. 동일 묘목을 일본에서 키우면 3피트 이상 자라지 못합니다. 앵초류 꽃의 자연적인 본래의 색깔은 노란색입니다. 그런데 말똥 거름으로 재배하면 빨간색이 됩니다. 카나리아의 아름다운 노란 색은 그 새에게 매운 양념을 많이 넣은 먹이를 주면 매우 어둡게 색깔이 변합니다. 백인들을 뜨거운 태양 아래 몇 달간 노출시키면 갈색으로 변합니다. 요한 베로 박사의 색깔과 종족이란 책에 따르면 &amp;ldquo;머리카락과 눈의 빛은 개개인의 나이와 종족의 나이에 따라 변하며, 중앙 유럽의 일부 몇 지역에서는 빨간 머리카락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회색 빛을 띤 갈색 머리카락이 일반적이다. 살색은 기후에 따라 변한다.&amp;rdquo;고 기술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b&gt;7. 하나님께서 땅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셨는데 창세기 2:4부터 또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창세기 1장과 모순이 되지 않나요?&lt;/b&g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답: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창세기 1장은 이 세상과 우주의 창조 과정을 차례대로 6일 동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2:4부터 나오는 내용은 이 세상이 아니라 6일째 사람을 지으시는 과정과 에덴 동산의 창조 과정을 기술한 것입니다. [&lt;span&gt;&amp;nbsp;&lt;/span&gt;&lt;b&gt;[주]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들을 창조하신 때 곧 이것들을 만드신 날에(in the day) 하늘들과 땅의 생성(生成)이 이러하니라.&lt;/b&gt;](2:4). 성경은 분명히 &amp;ldquo;이것들을 만드신 날&amp;rdquo;(day-단수)이라고 말합니다. 6일째 하루만을 언급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것을 창세기 1:11 이전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모순된다고 주장합니다. 창세기 2:5,6은 지구의 상태가 아니라 에덴 동산이 들어설 자리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신 후 5,6절의 땅을 9절처럼 만들어 주셨습니다. [&lt;b&gt;또 [주] 하나님께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모든 나무를 그 땅에서 내어 자라게 하시니 그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lt;/b&gt;]. 창세기 1장에 창조하신 종류대로의 나무들이 아니라 &amp;ldquo;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amp;rdquo;만 에덴의 동산에 자라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의 나무와 식물을 만드신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원을 가꿀 때 필요없는 것들을 없애 버리고,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와서 단장을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살게 될 에덴의 동산을 가꾸고 지키도록 환경을 만드신 것입니다. 성경을 예민하게 읽는다면 이 차이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창세기 2:19-20에는 하나님께서 에덴의 동산에서 즉시 &amp;ldquo;들의 모든 짐승들과 공중의 모든 날짐승을 지으셔서 아담에게로 데려 오셨습니다.&amp;rdquo;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름을 짓도록 하시기 위해서 들의 모든 짐승(숲의 짐승이 아님)과 공중의 모든 날 짐승들을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의 이 모든 일은 6일째 되는 단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흔히 하나님이 6일 째 하신 일을 &amp;ldquo;인간 창조&amp;rdquo;라고 단순하게 말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amp;ldquo;인간 창조와 에덴의 동산을 만드신 일&amp;rdquo;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셋째 날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섯째 날에 만들어졌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br /&gt;&lt;i&gt;&lt;b&gt;8.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왜 만드셨습니까?&lt;/b&g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실 이 질문은 모순되는 질문이 아니라 궁금한 사항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면 인간이 미리 죄를 지을 것을 알았을 것이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을 것을 알았을 터인데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들어서 인간으로 죄를 짓게 만들었느냐?는 원망과 책임 전가의 본능이 작용하여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이는 은행을 털다 잡힌 강도가 재판관을 향해 무엇 때문에 은행에는 돈이 많아서 나로 하여금 강도짓을 하게 했느냐?는 항변과 같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마 초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하는 질문 가운데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 중앙에 왜 만드셨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갖가지 추측과 억측, 구구한 해석이 난무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선하며,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었다고 만 말씀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만드시든지 전혀 간섭할 수 없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왕의 눈앞에서 벗어나려고 서두르지 말며 악한 것 가운데 서 있지 말지니 이는 왕이 무엇이든지 자기가 기뻐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이니라. 왕의 말씀이 있는 곳에 권능이 있나니 누가 왕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lt;/b&gt;](전8:3,4). 우리는 아무도 하나님께 창조하신 창조 세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모두 보시기에 좋았으며, 악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31에 이르기를, [&lt;b&gt;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그 저녁과 아침이 되니 여섯째 날이니라.&lt;/b&gt;]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좀 자유 방임형으로 무질서하게 생겼더라도 그것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생물들과 무생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얼핏 생각하기에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싶은 피조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파리는 왜 있는가? 모기는 왜 있는가? 아니면 병균들은 왜 있는가? 이런 질문에 우리는 현명하게 답해야 합니다.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인간은 그런 병균들과 파리나 모기, 독충들에게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 저주를 받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연 생태계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서로 간에도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분께서는/ 땅의 모든 거주민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 안에서든지 땅의 거주민들 가운데서든지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분의 손을 멈추게 하거나 그분께 이르기를, 당신은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lt;/b&gt;](단4:35).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 &amp;ldquo;왜?&amp;rdquo;라고 따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신 &amp;ldquo;왜 인간은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았는가?&amp;rdquo;와 같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계명조차도 순종하지 않았는가? 왜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를 그렇게 하찮게 여겼는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 나무를 동산의 중앙에 두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입니다. 이 중에 금지된 것은 &amp;ldquo;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amp;rdquo;였지 생명 나무는 아니었습니다. 생명 나무를 통해 인간은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나무는 계시록에서 다시 등장합니다(계2:7,22:2,22:14).&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에덴의 동산을 조성하신 하나님을 통해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풍성하심과 선하심, 축복은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기는가?에 대해서는 알아 볼 길이 없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순종했다거나 말씀을 믿었다거나 사랑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실과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태도를 가늠해 주는 잣대였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시험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갈보리 언덕에 높이 세워진 나무가 있으니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이 나무를 통해 인간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인간이 응답할 차례입니다. 그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이요, 믿지 않으면 지옥입니다. 이는 아담에게 주어진 약속과 동일한 약속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태도를 가늠해 주는 잣대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b&gt;9. 아담은 언제 죽었는가?&lt;/b&g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창세기 2:17에 따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lt;b&gt;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이는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을 것임이라, 하시니라.&lt;/b&gt;]. 하나님은 분명히 먹는 날(in the day that thou eastest)에 죽는다고 죽는 날짜를 명시해 주셨습니다. 반면 창세기 5:5에는 [아담의 전 생애는 구백삼십 년이었으며 그가 죽으니라.]고 말합니다. 이 둘은 모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순간에 죽은 것은 영이었습니다. 930년을 살다가 죽은 것은 몸이었습니다. 혼은 불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이 아닌 영이 죽었음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lt;b&gt;또한 그분께서 범법(犯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lt;/b&gt;](엡2:1). [&lt;b&gt;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lt;/b&gt;](엡2:5). 반면 몸의 죽음에 대해서도 말씀합니다. [&lt;b&gt;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니&lt;/b&gt;](히9:27). 영의 죽음과 몸의 죽음에 대해서 안다면 이 둘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말씀이지 모순이 아니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윌슨의 잠언이란 책에 이런 기사가 나옵니다. 수 십년간 영구차를 몬 운전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목사님들이 인도하는 장례 예배를 거의 매일 보았지만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워들은 성경 구절만으로도 삶과 죽음, 구원과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장례 예배를 마치고 오다가 윌슨 목사님과 운전사가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lt;b&gt;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지내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lt;/b&gt;](마8:22)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하고 윌슨 목사님이 운전사에게 물었습니다. 운전사는 이 말에 너무나 당황해서 &amp;ldquo;그런 말은 성경에 없다&amp;rdquo;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람은 20년 넘게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일을 했는데 자신이 죽은 자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가 이 구절을 통해 자신이 죽은 자란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 죽은 자는 영이 죽은 자이며, 자기의 죽은 자들이란 몸이 죽은 자들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b&gt;10.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혼했는데 어떻게 거인이 나올 수 있습니까?(창6:2,4).&lt;/b&g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인지 알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이들은 홍수 이전에도 있었고, 홍수 이후에도 있었습니다(이들은 다윗에 의해 모조리 죽는다-삼하21:22).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입니다(요1:12). 그러나, 이 아들들은 현재까지 아들로 입양되었지만 실제로 아들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있지는 않습니다(롬8:19). [&lt;b&gt;피조물이 간절히 기대하며 기다리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lt;/b&gt;](롬8:19).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년 왕국 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 나타날 것입니다. 반면 창세기 6장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지상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이들은 욥기 38:7에 언급된 천사들입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피조물을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예는 아담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3:38에는 아담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구약 성경에서 그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린 적이 없습니다. 흔히 인용하는 구절 가운데 이사야43:6은 이스라엘 민족을 자녀라고 표현한데서 유래한 것일 뿐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과는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가장 흔한 주석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라고 말하고, 사람의 딸들은 불경건한 카인의 후손들이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amp;ldquo;셋의 후예들과 카인의 딸들이 결혼하여 거인을 낳았더라&amp;rdquo;라고 기록할 일이지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말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이 결혼해서 거인이 태어나는 법은 없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천사는 성이 없고, 결혼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성경적 주장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2:30에서 [&lt;b&gt;이는 부활 때에는 사람들이 장가가지도, 시집가지도 아니하며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기 때문이니라.&lt;/b&gt;]하신 말씀 가운데 &amp;ldquo;하늘에 있는&amp;rdquo;이란 말을 빼면 안됩니다. 창세기 6장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 땅에 내려온 천사들(유6)이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천사는 다 남자이며, 날개가 없습니다. 이들은 생식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앞으로 마지막 때에 다시 사람의 딸들을 취할 것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b&gt;11. 하나님은 후회하실 수 있습니까? (창6:6) 제가 듣기로는 하나님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모순이 되지 않습니까(민23:19, 삼상15:29).&lt;/b&g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lt;b&gt;[주]께서 땅에 사람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고 또 이로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며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하되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날짐승까지 다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을 후회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lt;/b&gt;](창6:6,7). 사무엘상 15:11을 보십시오. [&lt;b&gt;내가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이는 그가 나를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 내 명령을 수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주]께 부르짖으니라.&lt;/b&gt;] 그러나, 곧 이어 아래서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강력하신 이는 거짓말을 하거나 후회하지 아니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후회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이다.](삼상15:29).&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런 구절들을 읽고서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말로 회개 또는 후회라고 번역된 repent에는 일반적으로 잘못, 죄, 오류로 인해 빚어진 결과나 행위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단순히 마음을 돌이키다는 뜻이 포함됩니다. &quot;다시 한번 생각하다(re/pent)&quot;. 하나님은 죄를 짓거나 악을 행하시지 않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회개하거나 후회하시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반면 인간들이 행한 악과 죄를 보실 때 하나님은 이들에 대해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는데, 거기에 대해서 후회를 하십니다. 사람에게 사용된 repent는 악을 근절하고 돌이키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하나님에게 사용된 repent는 &amp;ldquo;오래 참으심의 끝&amp;rdquo;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의 의미를 안다면 이 구절들은 모순이 아니라 보충적인 의미를 지닌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b&gt;12. 창세기 9:14은 과학적 사실과 모순되지 않습니까?&lt;/b&g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모순이 아닙니다. [&lt;b&gt;내가 구름을 가져다가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서 보이면&lt;/b&gt;](창9:14). 성경에 따르면 모든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존재한다는 점을 암시해 줍니다. 문제는 우리가 지상에서 하늘의 구름들을 볼 때 무지개를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가끔 비가 오고 난 후거나 일몰 전후에만 잠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무지개는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기 위한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로 비행할 때 아래 구름을 내려다 보면 쉽게 무지개를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낮에 정원에 물을 뿌릴 때 흩날리는 spray들 사이로도 무지개는 보입니다. 빛이 비추이기만 하면 모든 구름은 그 사이에 무지개를 보여 줍니다. 달빛 속에서도 무지개가 보이며, 밝은 별빛 속에서도 무지개는 관찰됩니다. 지구를 덮고 있는 모든 구름은 항상 무지개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보실 때는 24시간 내내 무지개를 보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일찍부터 그 사실을 말해 주었고, 과학은 최근에 그런 현상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b&gt;13. 왜 죄는 함이 지었는데 저주는 가나안이 받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성품과 모순되지 않습니까?&lt;/b&g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자기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보고 밖에 있는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올려놓고 뒷걸음쳐 들어가 자기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덮더니 그들의 얼굴이 뒤를 향하였으므로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포도주에서 깨어나 자기의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을 것이요, 그 형제들에게 종들의 종이 될 것이니라, 하고&lt;/b&gt;](창9:22-25).&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서 성도들이 자주 제기하는 의문은 두 가지입니다. 어떻게 함이 행한 사소한 실수를 가지고 노아가 무서운 저주를 할 수가 있는가?와 왜 함이 아닌 함의 자식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는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을 매우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아버지 노아가 술에 취해 옷을 다 벗은채 자는 것을 보고 다른 형제들에게 일러 주었을 뿐인데 노아가 일어나서 불같이 화를내며 저주를 했다면 노아의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준행한 노아가 자신의 벌거벗은 몸이 들킨 사실로 인해 그렇게 화를 낸 것은 아닙니다. 22절에서 함은 &amp;ldquo;자기 아버지의 벌거벗음을 보고&amp;rdquo;라고 말했지만 24에서 노아는 깨고 나서 그 사실을 안 것이 아닙니다. 함이 눈으로만 아버지를 보고 나갔다면 술에 취한 채 자고 있는 노아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노아는 술에서 깨고 나서 &amp;ldquo;자기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amp;rdquo;라고 말합니다. 눈으로 보고 간 일은 자기에게(unto him) 아무 것도 안 한 것이지 한 것이 아닙니다. 노아가 말하는 것은 자기 몸에 함이 무슨 짓을 하고 간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동성연애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하지 않더라도 성경을 읽으면서 구절과 구절을 비교하면 함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저절로 알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레위기 18:6,7을 펴 보십시오. [&lt;b&gt;너희 가운데 아무도 가까운 친족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벌거벗음을 드러내지 말라. 나는 [주]니라. 너는 네 아버지의 벌거벗음이나 네 어머니의 벌거벗음을 드러내지 말라. 그녀는 네 어머니인즉 너는 네 어머니의 벌거벗음을 드러내지 말지니라.&lt;/b&gt;] 이는 근친 상간, 동성연애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노아의 증언과 레위기의 말씀을 통해 창세기 7:22에서 함이 아버지 노아의 벌거벗음을 보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왜 범죄한 함이 저주를 받지 않았는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은 이미 창세기 9:1에서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서 동일한 죄를 보았거나, 미리 앞을 내다 보았음에 틀림없습니다. 함이 아버지 노아에게 하는 짓으로 보아 함의 아들 가나안도 함과 동일한 죄를 범하였거나 깊이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이후로 성경에서 가난안 족속들이 하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과 역사는 동일하게 가나안 족속들의 성적 문란, 동성애, 근친상간, 짐승들과의 교접 등에 대해서 언급하며, 이는 노아의 저주가 매우 정당했음을 입증해 줍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출처:&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lt;a href=&quot;https://av1611.tistory.com/1832?category=257451&quot;&gt;https://av1611.tistory.com/1832?category=257451&lt;/a&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lt;span&gt;&amp;nbsp;&lt;/span&gt;[❏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자료/성경</category>
      <author>KWe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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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2 May 2021 21:37:5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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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말기 신장병 혈액투석 투병중에 예수님 만난 이야기. Vlog 브이로그</title>
      <link>https://kbible.tistory.com/41</link>
      <description>&lt;p&gt;&lt;a href=&quot;https://youtu.be/PHk5jCsm2_s&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youtu.be/PHk5jCsm2_s&lt;/a&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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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caption&gt;&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신장병 투병을 하면서 혈액투석 중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저에게는 신부전이 복입니다. 그 사실을 더 확실하게 알아가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를 브이로그[VLOG] 형식으로 올려 보았습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gt;투석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성경을 접하게 되었고, 예수그리스도가 왜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나를 향해 의롭다고 선언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gt;에베소서 2장 8절말씀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라는 말씀을 통해서 많은 의심들이 단번에 풀어질 수 있었고, 100%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값없이 구원의 선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말씀/간증</category>
      <category>기독교</category>
      <category>말기신장병</category>
      <category>신부전</category>
      <category>신장병</category>
      <category>신장병투병</category>
      <category>예수님</category>
      <category>하나님</category>
      <category>혈액투석</category>
      <author>KWe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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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0 Nov 2020 21:07:16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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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수를 사랑할 수 있어요? 사람들과의 관계</title>
      <link>https://kbible.tistory.com/40</link>
      <description>&lt;p&gt;&lt;span&gt;&lt;a href=&quot;https://youtu.be/9jfVfbxjPfI&quot;&gt;https://youtu.be/9jfVfbxjPfI&lt;/a&gt;&lt;/span&gt;&lt;/p&gt;
&lt;figure data-ke-type=&quot;video&quot; data-ke-style=&quot;alignCenter&quot; data-video-host=&quot;youtube&quot; data-video-url=&quot;https://www.youtube.com/watch?v=9jfVfbxjPfI&amp;amp;feature=youtu.be&quot; data-video-thumbnail=&quot;https://scrap.kakaocdn.net/dn/AGlUx/hyIbZpKhpp/GxbgEfGHWrV6HK2DBVbqOk/img.jpg?width=640&amp;amp;height=480&amp;amp;face=468_120_562_223&quot; data-video-width=&quot;640&quot; data-video-height=&quot;480&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9jfVfbxjPfI&quot; width=&quot;640&quot; height=&quot;480&quot; frameborder=&quo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iframe&gt;
&lt;figcaption&gt;&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나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시고, 이미 사랑하셨습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gt;세상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싫어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대해야 하는지, 성경 말씀을 통해 알아봅니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 음원출처 : 크리스찬BGM &lt;/span&gt;&lt;/p&gt;
&lt;p&gt;&lt;span&gt;- 제목 :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gt;- 링크 : &lt;a href=&quot;https://youtu.be/guhO6fRmTN0&quot;&gt;https://youtu.be/guhO6fRmTN0&lt;/a&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 제목 : 꽃들도 &lt;/span&gt;&lt;/p&gt;
&lt;p&gt;&lt;span&gt;- 링크 : &lt;a href=&quot;https://youtu.be/CsjrEW0k6LE&quot;&gt;https://youtu.be/CsjrEW0k6LE&lt;/a&gt;&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말씀/설교</category>
      <category>사람들과의관계</category>
      <category>원수</category>
      <category>원수를사랑하라</category>
      <author>KWe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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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0 Nov 2020 12:58:4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죽음을 앞둔 히스기야의 기도와 통곡, 아픈 사람들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위로</title>
      <link>https://kbible.tistory.com/39</link>
      <description>&lt;p&gt;&lt;span&gt;&lt;a href=&quot;https://youtu.be/u3_DqOp0Kdg&quot;&gt;https://youtu.be/u3_DqOp0Kdg&lt;/a&gt;&lt;/span&gt;&lt;/p&gt;
&lt;figure data-ke-type=&quot;video&quot; data-ke-style=&quot;alignCenter&quot; data-video-host=&quot;youtube&quot; data-video-url=&quot;https://www.youtube.com/watch?v=u3_DqOp0Kdg&amp;amp;feature=youtu.be&quot; data-video-thumbnail=&quot;https://scrap.kakaocdn.net/dn/wrMFL/hyIauET92T/bAvwiK7gsWRhyMK0TK6mi0/img.jpg?width=640&amp;amp;height=480&amp;amp;face=459_120_532_200&quot; data-video-width=&quot;640&quot; data-video-height=&quot;480&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u3_DqOp0Kdg&quot; width=&quot;640&quot; height=&quot;480&quot; frameborder=&quo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iframe&gt;
&lt;figcaption&gt;&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어느 날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적인 일이 다가왔을 때, 죽음을 앞둔 히스기야의 눈물과 기도를 떠올려 보시고, 그 모든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보시길 바랍니다. 긍휼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실 것이고, 우리를 가장 유익할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음원 : 크리스찬BGM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 : 나는 찬양하리라. &lt;/span&gt;&lt;/p&gt;
&lt;p&gt;&lt;span&gt;링크 : &lt;a href=&quot;https://youtu.be/pxjHe1krc-k&quot;&gt;https://youtu.be/pxjHe1krc-k&lt;/a&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음원사용을 허락해주신 크리스찬BGM께 감사드립니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말씀/설교</category>
      <category>기독교</category>
      <category>죽음</category>
      <category>하나님</category>
      <category>히스기야</category>
      <category>히스기야의기도</category>
      <category>히스기야의눈물</category>
      <category>히스기야의통곡</category>
      <author>KWe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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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0 Nov 2020 12:52:30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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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 왜 하필 나입니까? 말기신부전,혈액투석,신장이식</title>
      <link>https://kbible.tistory.com/38</link>
      <description>&lt;p&gt;&lt;a href=&quot;https://youtu.be/RkObD5MbAN0&quot;&gt;https://youtu.be/RkObD5MbAN0&lt;/a&gt;&lt;/p&gt;
&lt;figure data-ke-type=&quot;video&quot; data-ke-style=&quot;alignCenter&quot; data-video-host=&quot;youtube&quot; data-video-url=&quot;https://www.youtube.com/watch?v=RkObD5MbAN0&amp;amp;feature=youtu.be&quot; data-video-thumbnail=&quot;https://scrap.kakaocdn.net/dn/bSyOGR/hyH3zsRqnN/KfKOQdyU3x3hgF69g55wyk/img.jpg?width=1280&amp;amp;height=720&amp;amp;face=0_0_1280_720&quot; data-video-width=&quot;860&quot; data-video-height=&quot;484&quot; data-video-origin-width=&quot;860&quot; data-video-origin-height=&quot;484&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RkObD5MbAN0&quot; width=&quot;860&quot; height=&quot;484&quot; frameborder=&quo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iframe&gt;
&lt;figcaption&gt;&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span&gt;말기신부전 진단을 받고 느꼈던 마음과 하늘을 향한 원망!! 그것은 하나님과 만남을 위한 시작이었습니다. 혈액투석을 하면 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lt;span&gt;음원 : 크리스찬BGM &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gt;&lt;span&gt;제목 : 나의안에거하라 &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gt;&lt;span&gt;링크 : &lt;a href=&quot;https://youtu.be/azrBc1J4zsA&quot;&gt;https://youtu.be/azrBc1J4zsA&lt;/a&gt; &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gt;&lt;span&gt;음원사용을 허락해주신 크리스찬BGM께 감사드립니다.&lt;/span&gt;&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말씀/간증</category>
      <category>기독교</category>
      <category>말기신부전</category>
      <category>신장이식</category>
      <category>왜 하필 나야</category>
      <category>투석</category>
      <category>하나님</category>
      <category>혈액투석</category>
      <author>KWe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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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kbible.tistory.com/38#entry38comment</comments>
      <pubDate>Sat, 31 Oct 2020 20:44:3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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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귀에 대하여</title>
      <link>https://kbible.tistory.com/37</link>
      <description>&lt;p&gt;&lt;span&gt;오늘날 교회는 마귀와 그의 역사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고, 성도들 역시 그런 주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귀를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이나 무당들이 푸닥거리하면 물러가는 정도로 알면 큰 오산입니다. 물론 성도들은 그렇게 알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성경적인 정확한 개념과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성령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지만 성령에 대해서 무지한 것같이 마귀에 대해서 거의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마귀는 이 세상의 통치자이며(엡2:2), 공중 권세 잡은 자입니다. 마귀는 높은 처소에 자신의 영적 군대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사역자들을 가지고 있고(고후11:15), 자신의 교회가 있습니다(계2:9, 3:9). 마귀는 천사장 미가엘과 다투기도 했으며, 다니엘의 기도 응답을 들고 오는 천사 가브리엘을 21일간 막기도 했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신부가 있고, 자신의 천사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는 것처럼 마귀 역시 자신의 자녀들이 있습니다(요일3:10, 요8:44). 마귀는 성도들을 대적하며, 삼키려 하며, 범죄하게 하며, 하나님을 불신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처럼 마귀는 악령을 통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귀는 불순종하는 자녀들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엡2:2). 마귀는 다니엘보다 지혜롭습니다. [&lt;b&gt;보라,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사람들이 네게 숨길 수 있는 은밀한 일이 없나니&lt;/b&gt;](겔28:3). 마귀는 이런 지혜로 사람들을 점쟁이로 만들어서 점괘를 봐 주기도 하고, 점성술이나 각종 운명 철학관을 운영하게 합니다. 교회 내에 성도들도 마귀로부터 이런 점치는 영을 받은 사람들이 크게 오해를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신통력이나 영안을 받았다고 굳게 믿거나,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게 하기도 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마귀는 습하고, 어둡고, 더러운 무덤 가에만 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에 어디에나 마음대로 들락거립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던 바로 그곳에도 마귀는 있었습니다. 마귀는 회당에서 예수님의 설교를 듣는 회중 안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설교를 하는 그 장소에 마귀는 함께 있었고, 마귀들린 사람 역시 그 곳에 있었습니다. [&lt;b&gt;회당에 부정한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어 큰 소리로 외치며&lt;/b&gt;](눅4:33). 어디에? 회당에.... 마찬가지로 마귀는 오늘날 교회를 자신의 거처로 삼고 있다고 해서 아무런 이상이 있을 것이 없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탄은 성도들을 이용하기도 합니다(고후2:11). 사탄은 전도 여행을 막기도 했습니다(살전2:18). [&lt;b&gt;그러므로 우리가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고 특히 나 바울은 한번 두번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lt;/b&gt;](살전2:18). 사탄은 성도가 기도하는 것을 막고 성경을 읽는 것을 막기도 합니다. 사탄은 온 세상을 속이며, 성도들이 들은 말씀이 마음속에서 자라지 못하도록 즉시 와서 빼앗아 가며(막4:15),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습니다(벧전5:8). 전에 저와 교제하던 한 형제는 영적 열정도 있고, 기도도 열심히 했고, 신앙 서적도 열심히 읽었는데 유독 성경만은 읽지 못했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으라고 권면하자 그는 한 동안 머뭇거리다 고백하기를 자기는 성경을 읽으려고만 하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전화가 오거나 누가 찾아 오거나 일이 생기거나 머리가 어지럽거나 별별 일이 다 생겨서 그는 몇 년 동안 한번도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외우는 성경 구절은 모두 신앙 서적에서 인용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르고 균형잡힌 진리의 지식이 아니라 매우 왜곡된 지식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마귀에게 사로 잡혀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구령의 열매를 맺듯이 사탄 역시 자신의 사역의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lt;b&gt;이는 이미 사탄에게 돌아선 자들도 있기 때문이라.&lt;/b&gt;](딤전5:15).&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저는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우리 교회 형제 자매님들이 모두 [십자가와 마귀]에 대해 바른 진리의 지식을 소유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께서 저희 눈을 열어 주시고, 이 시간 특별히 마귀를 결박해 주셔서 마음 속에 말씀이 깊이 뿌리 내리기를 빕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오늘날 성도들이 성경을 통해서 마귀의 정체와 그를 대적하는 법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귀에 대한 그들의 지식과 정보는 상업 영화나 전설의 고향이나 신화같은 것에서 그릇되이 얻은 것이 전부입니다. [십자가와 마귀]는 영화의 소재로, 전설이나 민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합니다. 영화 속의 사제들이나 주술사들은 마귀를 퇴치하기 위해서 십자가 목걸이에, 십자가가 그려진 성경책과 손에는 십자가 문양이 된 장난감 하나를 들고 있다가 그것을 앞으로 내밀면서 마귀와 대적하는 그런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마귀는 십자가의 모양만 보아도 무서워한다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십자가의 문양이나 틀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두려워합니다.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주님은 마귀를 이기셨기 때문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도들이 마귀에 대해서 무지한 만큼 마귀는 쉽게 속일 수 있고, 포로로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인류 6000년 역사에서 마귀를 1:1로 맞싸워서 이기신 분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연약하게 되셨지만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주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마귀를 이기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이는 우리가 개미 한 마리를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되시고 마귀는 그대로인 채 싸우라면 마귀도 자신감이 넘칠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길 수 없으랴?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마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의 아들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곤경에 몰아 넣으셨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도록 만들었습니다. 결국은 십자가에 메달아 죽여 버렸습니다. 마귀는 완전히 승리한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신 주님은 마귀와의 전투에서 불리하다고 해서 단 한번도 반칙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단 한 차례도 속임수나 편법을 동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고통은 고통대로 다 감당하셨고, 수치와 모욕은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도 마귀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으셨고, 범죄하지 않으셨고, 시험에 무너지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마귀를 멸하시고, 부활을 통해 승리하셨습니다. 갈보리는 마귀의 승전지가 아니라 주님의 결정적 승리를 이룬 빛나는 역사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경은 승리의 비결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첫째, 그리스도를 통하여서입니다. [&lt;b&gt;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lt;/b&gt;](고전15:57). 영적 승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승리는 목표가 아니라 갈보리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결과입니다. 승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결코 해결할 수 없고, 이길 수 없던 문제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승리의 선물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음으로 이런 승리를 여러 번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승리가 연중 행사처럼 일년에 간혹 몇 번 있는 그런 것에 불과한 경험적 사건이 아니라 매 순간 늘 있는 지속적 체험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속적인 승리, 항구적인 승리를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비결은 간단합니다. In Chris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둘째,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lt;b&gt;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lt;/b&gt;](고후2:14).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심으로써 그리스도의 모든 자원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십니다. 마치 뿌리가 가지에게 자양분을 일분일초의 간격도 없이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심으로 그렇게 승리를 주십니다. 갈보리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에게 부어졌고, 죽음의 침례를 통해 우리는 그분 안으로 깊이 잠기게 되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셋째, 우리의 믿음입니다. [&lt;b&gt;이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lt;/b&gt;](요일5:4-5). 말씀을 통해서 형성된 믿음, 성령의 열매로 자라난 믿음은 세상을 이깁니다. 믿음은 마귀를 이기신 주님과 우리를 하나로 연합하기 때문에 마귀가 우리를 이길 수 없지만 믿음이 없다면 주님과 우리는 각각 독립적인 존재로 분리되고 맙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의존한 상태, 주님과 연합된 상태가 바로 믿음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현재 현실에서 겪는 경험은 승리는 고사하고 비참할 정도로 패배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육신은 지치고, 정신은 고갈되고, 영은 메마릅니다. 말씀과 생활의 완전한 분리와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간격으로 인해 결국에는 믿음마저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합니까? 이는 성도들이 &amp;lsquo;그리스도 안에서&amp;rsquo;가 아닌 &amp;lsquo;자아&amp;rsquo;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amp;lsquo;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amp;rsquo;라고 말합니다. 청교도의 대부였던 윌리엄 로(William Law)는 말하기를 &amp;lsquo;자아는 죄가 머무르는 거처와 좌석일 뿐 아니라 죄의 생명 자체이다. 마귀의 모든 역사는 자아 안에서 이루어진다. 자아야말로 마귀가 일하는 작업장이다&amp;rsquo;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이유로 주님은 우리에게 처절한 실패와 슬픔과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하도록 하시며, 마귀의 올무에 사로잡히게 허락하시며(딤전3:7), 마귀의 간계에 빠지게도 하시며(엡6:11), 마귀의 정죄에 시달리게도 하며(딤전3:6), 간혹 마귀의 뜻대로 마귀에게 사로잡히도록 허락하십니다(딤후2:26). 실제로 베드로를 비롯한 열 한 제자는 사탄에게 밀 까부르듯 심한 시험을 당했습니다. [&lt;b&gt;또 {주}께서 이르시되,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갖기 원하였으나&lt;/b&gt;](눅22:31). 이는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대신 자신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야와 삽비라 역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었지만 사탄으로 충만하여 성령께 거짓말을 했습니다. [&lt;b&gt;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야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lt;/b&gt;](행5:3). 구약의 3대 의인이요, 우리에게 인내의 본으로 기록된 욥 역시 자기 의를 신뢰했을 때 그는 마귀로부터 극심한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를 보이리라, 주님과 변론하리라 주장했지만(욥13:3, 욥29:14, 31:6) 후에 시험을 당한 후에 [그러므로 내가 내 자신을 몹시 싫어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더라.](욥42:6)고 고백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마귀는 성도들의 일상 생활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 속에 있으며 우리의 먹고 입는 것, 생각하는 것 하나 하나에 영향을 미칩니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성령이 아니라 악령을 따라 살았습니다. [&lt;b&gt;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靈)이라.&lt;/b&gt;](엡2:2). 우리는 마귀의 자녀였고, 세상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성도들은 누구나 다 갈보리의 십자가를 자신의 무덤으로 삼고, 부활의 동굴을 자신의 생명의 탄생지로 삼을 때까지 결코 마귀를 이길 힘을 갖지 못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이나 육신을 위해 사는 한 그는 결코 마귀에게 위협을 줄 수도 그 어떤 상처나 타격을 가할 수 없습니다. 때로 마귀는 소유의 풍부함을 제공함으로써, 육신이 지칠 정도의 과중한 일 거리를 줌으로써, 뭐든지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소망이 넘치게 함으로써,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조성함으로써, 지금은 잠시 고생해도 조만간 다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부여함으로써 십자가 없는 신앙 생활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런 성도는 기도할 시간도, 성경을 읽을 시간도, 교회의 예배나 기도 모임에 나올 시간조차도 마귀에게 헌납해 버린 채 살기 때문에 자신이 마귀의 올무에 단단히 걸린 사실조차도 잊고 삽니다. 그렇게 번 돈, 그렇게 얻은 명예, 그렇게 얻은 어떤 것도 어느 한 순간에 허망하게 날아가 버리거나, 지금까지 투자했던 시간에 상응하는 고통의 세월을 보낸 후에야 자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때로 성도들이 오해하는 구절 가운데 하나는 [&lt;b&gt;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니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자기 자신을 지키매 저 사악한 자가 그를 건드리지도 못하느니라.&lt;/b&gt;](요일5:18)란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오랫동안 크리스천은 마귀 들릴 수도 없고, 악령의 공격을 당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가르침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앞선 예에서 보듯이 성도들 역시 사탄이 마음에 가득할 수 있고, 마귀의 뜻대로 마귀의 올무에 사로잡힐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속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도들의 일생은 마귀와의 영적 전쟁을 하며 사는 삶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과 평안은 없습니다. 때로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끊임없는 고난과 박해를 받으며, 마귀의 불붙은 화살이 쉼없이 날아듭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감으로 주어진 생명의 책이요, 주의 법이 기록된 법전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전쟁의 책입니다. 성경은 주님의 전쟁의 책이며,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전권은 하나님과 마귀의 영적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님과 마귀와의 전쟁은 저 에덴에서부터 시작되어 천년 왕국이 끝나는 그날까지 성경을 관통하는 거대한 역사입니다. [&lt;b&gt;이러므로 [주]의 전쟁의 책에 일렀으되, 그가 홍해와 아르논의 시내에서 행하였고&lt;/b&gt;](민21:14). 주님은 전사시며(출15:3-[주]는 전사(戰士)시요, [주]가 그분의 이름이시로다.), 구원의 대장이시며(captain), 우리는 모두 그분의 군사입니다(딤2:3-4).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주의 군대였듯이, 신약에서 교회는 주님의 군대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의 전쟁은 혈과 육에 속한 전쟁이 아닙니다. 강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원수가 높은 처소에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자아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결코 이 전쟁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갈보리의 십자가는 우리를 죄에서 건져낼 뿐 아니라 우리를 악한 현 세상에서 건져냈습니다. 갈보리의 십자가를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정욕을 거부하고 맑은 정신으로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 하셨습니다. 만약 우리 마음이 아직 세상의 정욕(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을 그대로 품고 있다면 그는 마귀의 편이지 결코 주님의 편이 아닙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십자가 없이 성령을 외치는 잘못과 더불어 자기 안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대로 둔 채 모든 일에 마귀를 들먹이는 잘못을 범합니다. 마귀론에 미친 교회를 보면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고 전부 다 마귀의 짓거리라고만 떠듭니다. 전에 마귀론에 깊이 빠졌던 한 목사님은 입에서 예수란 이야기보다 마귀란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자기 뜻대로 안되는 모든 일에는 늘 마귀를 탓했습니다. 물론 그분의 말씀 중에 상당수는 마귀의 책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 안에 마귀의 틈(처소&amp;middot;place)을 내 주고 나서 마귀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죄를 변명하고 핑계로 삼기 위해서 &amp;lsquo;마귀&amp;rsquo;를 자꾸 언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윗은 마귀의 유혹으로 인구 조사를 했다가 엄한 징계를 받았지만 자신의 죄를 회개했지 마귀 탓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욥은 마귀로부터 까닭없는 고난을 받았지만 마귀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 역시 마귀에게 까불림을 받아 주님을 부인했지만 눈물로 자신의 죄를 회개했지 모든 책임을 마귀에게 돌리고 자신은 빠져 버리지 않았습니다. 마귀에게 속았다면 그 속은 책임은 언제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마귀를 탓하는 성도들은 마귀를 탓하는 동시에 먼저 자기 자신을 탓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귀는 어차피 우리의 적인 것입니다. 적이 적에게 하는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육신적인 삶을 사는 것이 전적으로 마귀의 책임은 아닙니다. 일차적인 책임은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lt;b&gt;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lt;/b&gt;](엡4:27). 내 안에 마귀의 진지를 구축해 놓고 마귀와 전쟁을 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마귀를 불러들이는 자아를 십자가에 내려놓기를 거부하는 신자가 마귀를 대적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이 되신 주님을 보십시오. [&lt;b&gt;이제부터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올 것임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서 아무것도 취할 것이 없느니라.&lt;/b&gt;](요14:30). 주님은 자신 안에 마귀가 취할 것을 전혀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다. 마귀가 오지만 주님에게서 아무 것도 취할 것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자아를 처리해 버린다면 마귀는 우리 안에서 아무 것도 취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갈보리의 십자가로 가 봅시다. 갈보리의 십자가는 마귀와의 전쟁을 일단락 하는 역사적 분기점입니다. 에덴에서부터 이 전쟁은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lt;b&gt;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대감(敵對感)을 두리니 여자의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lt;/b&gt;](창3:15). 마귀는 이 때부터 여자의 씨가 이 세상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 마귀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31, 16:11을 보십시오. [&lt;b&gt;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제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리라.&lt;/b&gt;](요12:31), [&lt;b&gt;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라.&lt;/b&gt;](요16:11). 이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왕국은 완전히 주님이 차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고, 어둠의 권능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왕국으로 옮겨졌습니다. [&lt;b&gt;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lt;/b&gt;](골1:13). 눈에 보이는 물질적이고 정치적이며, 지상 왕국인 하늘의 왕국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피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주님의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게 된 신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마귀를 멸하셨기 때문입니다. [&lt;b&gt;자녀들은 살과 피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lt;/b&gt;](히2:14).&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이 죽은 죽음을 믿는 성도들은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권능이요, 지혜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마귀는 오늘날 강단에서 십자가의 설교를 사라지게 하고 대신 성령의 능력, 성령의 은사, 성령 체험만을 강조하게 함으로써 느낌만 있을 뿐 전혀 열매가 없는 교회 생활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십자가를 통해 옛 생명을 처리하고 새 생명을 얻은 성도들에게만 유효합니다. 갈보리의 죽음을 통해 전에 우리를 다스리고 지배하던 마귀가 패배하고 심판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성도들이 얼마나 적은지 모르겠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갈보리의 십자가는 패배의 죽음이 아니라 승리의 죽음이란 사실은 다음 구절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lt;b&gt;정사(政事)들과 권능들을 노략하사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lt;/b&gt;](골2:15). 십자가는 노략하고 탈취물을 나누는 승리의 전쟁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전리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이사야 53:12, [&lt;b&gt;그러므로 내가 그로 하여금 위대한 자들과 몫을 나누게 하며 강한 자들과 노략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혼을 쏟아 부어 죽기까지 하며 범죄자들과 함께 계수(計數)되었음이니라. /그러나/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들을 위하여 중보(仲保)하였느니라.&lt;/b&gt;](사53:12)는 말씀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육신은 채찍에 맞으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힌 채 죽어 가는 비극적인 종말이었는데 이것이 전리품을 취하는 승리라는 사실은 역설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amp;lsquo;죄인의 교수대가 승리자의 개선 마차&amp;rsquo;였습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를 통해 마귀의 권세를 노략하고, 혼들을 이겨 올 수 있습니다. 견고한 마귀의 진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lt;b&gt;용사가 탈취한 것을 어떻게 빼앗으며 합법적으로 끌려간 포로를 어떻게 건져 낼 수 있으랴? 그러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가 끌고 간 포로들도 빼앗아 오고 무서운 자들이 탈취한 것도 건져 내리니 이는 내가 너와 싸우는 자와 싸우고 네 자녀들을 구원할 것임이라.&lt;/b&gt;](사49:24-25). 십자가의 핵심 사역이 바로 마귀의 포로들, 마귀의 종살이를 하는 사람들을 노략하고 탈취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야말로 영혼들을 이겨오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주님의 이 승리는 과거의 역사에 한 정점으로 기억되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지속되는 현재적 승리입니다. 갈보리의 십자가를 통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서 전쟁을 치르는 군사들을 보십시오. 계시록 12:11, [&lt;b&gt;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거의 말로 그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였도다.&lt;/b&gt;](계12:11). 미래에 있을 이 사건은 그들이 갈보리 십자가의 피를 어떻게 영적 전쟁에서 사용했는지, 어떻게 승리했는지 잘 보여 줍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승리의 길입니다. 환란 성도들의 두려움 없는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amp;ldquo;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였도다!&amp;rdquo;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얻은 사람만이 자기 생명을 버릴 수 있습니다. 부활의 생명을 소유한 자만이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lt;b&gt;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에 이르도록 그것을 보전하리라.&lt;/b&gt;](요12:25).&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lt;b&gt;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은즉 그와 같이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이는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가 이미 죄를 그쳤기 때문이라.&lt;/b&gt;](벧전4:1).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을 배우게 됩니다. 십자가는 이론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몸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십자가란 애매한 고난과 모욕과 수치입니다. 십자가는 앞에 올 영광을 보는 것이지 현재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amp;lsquo;같은 생각으로&amp;rsquo;-같은 정신으로. 이것이 십자가의 정신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는 전투에 나갑시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서 이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영적인 원수는 영적인 방법으로 영적인 사람을 공격해 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공격으로부터 예외는 없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는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피하는 삶은 하나님의 징계가 기다리며, 십자가를 지는 삶은 마귀의 공격이 기다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승리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베소서 6:1-13, [&lt;b&gt;너희가 마귀의 간계(奸計)를 능히 대적하고 서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를 입을지니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대적(對敵)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政事)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것은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함이라.&lt;/b&gt;](엡6:11-13). 우리는 이 시간 이 구절을 설명하는 관주와 해설을 다는 대신 십자가에 못박힌 성도들이 해야 할 싸움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lt;b&gt;마귀를 대적하라&lt;/b&gt;]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전쟁의 병법을 다룬 책이란 사실을 다시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 성경을 군사학과 병법의 차원에서 보려는 노력조차 해 보지 않았다면 그는 이론과 실전에서 모두 패배에 들어선 것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gt;비록 우리가 육신 안에서 행하나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이는 우리의 전쟁 무기가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통하여 요새들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라.)&lt;/b&gt;](고후10:3-4). 이제 민간인으로서의 삶을 끊어버리고 군인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가 갖추어야 할 모습이 있다면 바로 전투하는 군대의 모습입니다. 갈보리에서 피로 구속받았고, 값을 치른바 되었으며, 해방된 성도들이 아직도 세상의 노예가 되어 육신에게 붙들려 마귀의 종노릇하고 있다면 포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갈보리의 십자가를 통해 승리하신 주님의 승리가 현재 나에게 승리로 직결되기 위해서는 그 갈보리의 십자가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다는 성경의 선포를 그대로 받아 들이십시오. 주님의 죽음이 내 안에서 역사하며, 주님의 생명이 또한 내 안에 역사한다는 진리를 그대로 믿으십시오. 주님은 지속적인 승리를 보장해 주십니다.&lt;/p&gt;
&lt;p&gt;&lt;br /&gt;&lt;br /&gt;&lt;span&gt;출처:&lt;span&gt; &lt;/span&gt;&lt;/span&gt;&lt;span&gt;말씀침례교회 Peter Yoon&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자료/기독교</category>
      <category>미귀</category>
      <author>KWe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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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2 Oct 2020 20:26:1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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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너무 아파서 잠 못 이루는 밤이 찾아올 때 (시편 77편 아삽의 시)</title>
      <link>https://kbible.tistory.com/36</link>
      <description>&lt;p&gt;&lt;a href=&quot;https://youtu.be/qMf14ow0V4Q&quot;&gt;https://youtu.be/qMf14ow0V4Q&lt;/a&gt;&lt;/p&gt;
&lt;figure data-ke-type=&quot;video&quot; data-ke-style=&quot;alignCenter&quot; data-video-host=&quot;youtube&quot; data-video-url=&quot;https://www.youtube.com/watch?v=qMf14ow0V4Q&amp;amp;feature=youtu.be&quot; data-video-thumbnail=&quot;https://scrap.kakaocdn.net/dn/bzVzPz/hyHMbZAVSl/wfjZzGcEuYRv5HFhCYs6u0/img.jpg?width=640&amp;amp;height=480&amp;amp;face=448_121_550_233&quot; data-video-width=&quot;640&quot; data-video-height=&quot;480&quot; data-video-origin-width=&quot;640&quot; data-video-origin-height=&quot;480&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qMf14ow0V4Q&quot; width=&quot;640&quot; height=&quot;480&quot; frameborder=&quo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iframe&gt;
&lt;figcaption&gt;&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너무 고통스러워서 말도할 수 없고 잠도 잘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는 시편 77편 기자를 통해, 나에게도 반드시 다가올 극심한 고난의 날을 생각해보고 평범한 날에 그에대한 준비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lt;span&gt;음원출처 Music Copyright ⓒ Christian BGM All Rights Reserved. &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gt;&lt;span&gt;링크 : &lt;a href=&quot;https://youtu.be/5aLojqSoDho&quot;&gt;https://youtu.be/5aLojqSoDho&lt;/a&gt; &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gt;&lt;span&gt;제목 :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 &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gt;&lt;span&gt;음원사용을 허락해 주신 크리스찬BGM께 감사드립니다.&lt;/span&gt;&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말씀/설교</category>
      <category>고난</category>
      <category>기독교</category>
      <category>불면</category>
      <category>아픔</category>
      <category>잠못이루는밤</category>
      <category>질병</category>
      <author>KWe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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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8 Oct 2020 09:31:3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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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성경과 세대주의</title>
      <link>https://kbible.tistory.com/35</link>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filename=&quot;book-1210030.jpg&quot; data-origin-width=&quot;4592&quot; data-origin-height=&quot;3448&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47jPf/btqKtfd1MEt/JMCIxyZZHu4u788dV1CaP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47jPf/btqKtfd1MEt/JMCIxyZZHu4u788dV1CaP1/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47jPf/btqKtfd1MEt/JMCIxyZZHu4u788dV1CaP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47jPf%2FbtqKtfd1MEt%2FJMCIxyZZHu4u788dV1CaP1%2Fimg.jpg&quot; data-filename=&quot;book-1210030.jpg&quot; data-origin-width=&quot;4592&quot; data-origin-height=&quot;3448&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gt;&lt;span&gt;성경과 세대주의&lt;/span&gt;&lt;/b&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경은 오류없이 글자 하나하나가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기에 하나님의 절대 권위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글자 하나하나에 영감받은 그 말씀들이 의미하는 바를 &quot;기록된 그대로&quot; 이해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러한 해석을 &quot;문자적 해석&quot; (literal interpretation)이라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문자적 해석은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신 성경의 권위를 올바로 제시하는 성경적 해석이며, 변개되지 않은, 즉 삭제되거나 첨가되지 않은 직역성경이 있을 때 가능하다. 또한 이러한 성경해석은 '세대주의'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그동안 변개되지 않은 성경이 없었던 한국교계는 당연히 '세대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결여될 수밖에 없었으며, 또한 종말론에 잘못 오용되기도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신학체계 자체가 규정되기 때문에 성경해석의 방법론은 신학이론이 체계화되기 전에 결정되어야 한다. 이제 성경과 '세대주의'의 관계를 설명함으로써 올바른 성경해석과 적용의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lt;b&gt;성경의 영감과 언어&lt;/b&gt;&lt;/span&gt;&lt;/p&gt;
&lt;p&gt;&lt;br /&gt;&amp;nbsp;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는가? 어떻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오류없이 영감받았고 섭리로 보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주이시고, 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는가? 이는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들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lt;/p&gt;
&lt;p&gt;&lt;br /&gt;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서(시8:1, 19:1, 104:24, 119:130, 145:9, 사40:26; 행14:17; 롬1:19-20),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을 통해서(창37:5-11; 겔1:1; 단7장), 천사를 통해서(창19장, 단12장, 계1:1), 양심을 통해서(롬2:14-15), 또한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서(히1:1-2),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을 통해서(롬15:4, 딤후3:16-17)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신다. 성경을 제외한 다른 방법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리고 성경이 기록되기까지는 사용하셨으나(자연의 양심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시는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롬 1:19-20, 행17:26-28, 롬2:14-15], 그러므로 복음이 제시될 때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믿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온전한 성경을 주셨기 때문에(고전13:10, 딤후3:16) 언어로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올바로 아는 것이 성경적인 방법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현대의 많은 신학자들은 인간의 언어에 대해 회의를 표시한다. 하나님은 무한하고 절대적이신데 반해 인간은 유한하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제한된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을 표현하기에는 부적당하다고 한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그분의 메시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성경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 관해 회의를 표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들의 언어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었으며,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그것을 기록했다.&lt;/p&gt;
&lt;p&gt;하나님께서 언어를 만드셨고 그 언어로 인간이 알아야 할 것을 인간에게 계시하셨으며,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여 기록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영감받은 말씀을 보존하셔서 우리가 지금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통용되는 언어가 있었다. 최초의 사람 아담은 하나님과 대화했는데, 그 도구는 언어였으며 이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아담은 모든 생물의 이름을 지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창2:19), 아담과 이브는 서로 대화했으며(창 2:23), 그들은 &quot;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quot;(창3:8) 주 하나님의 면전에서 피하여 동산 나무들 사이에 숨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죄를 지은 것과 그에 대한 형벌을 말씀하실 때, 하나님과 아담과 이브 사이에는 구체적인 대화가 있었고 서로에게 어떤 오해도 없이 그 판결은 종결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에덴에 있었던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나 말씀하신 것(창2:16-17)을 이해하지 못해서,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정확한 의미와 뉘앙스를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아담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면서 불순종한 것이다(롬5:19). 아담 이후에 하나님과 개별적으로 대화한 사람들(카인, 노아, 아브라함, 모세, 바울...)은 모두 그분과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여기에는 전혀 오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 가운데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범죄하지는 않았다. 성경 자체가 바로 그 증거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느 누구도 개인적인 경험으로 신학을 정립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시고 기록하신 성경을 통해서 근본적인 교리에서부터 구체적인 성경적 사실들을 알 수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이 문자 하나하나에 영감으로 오류없이 기록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것을 인간은 올바로 알 수 없으며, 성경을 해석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신정통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경이 개인에 따라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면 서로의 경험이 차이가 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 옳은가를 누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오직 &quot;기록된&quot; 성경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성경이 오류를 지니고 있고 인간적인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라면(학자들이 주장하는 개념영감, 목적영감, 부분영감, 유기적 영감설에 따른 성경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믿음과 신학은 전혀 성립될 수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한다는 것은 그 전제가 분명해야 한다. 바로 성경은 인간의 언어를 통해 글자 하나하나에 영감을 주셔서 인간에게 주신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할 때 올바른 성경 해석과 적용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세대주의'의 근본원칙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성경의 절대권위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그 성경에 대한 절대권위는 성경이 글자 하나하나에 영감을 받아 오류없이 기록되었다는 믿음이 없이는 무의미한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gt;&lt;span&gt;문자적 해석이란?&lt;/span&gt;&lt;/b&gt;&lt;/p&gt;
&lt;p&gt;&lt;br /&gt;일반적으로 &quot;해석한다&quot;는 말은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며, &quot;문자적&quot;으로 해석한다는 말은 언어의 통상적이고 관습적인 용법들에 따라 필자가 원래 의미한 바를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성경의 문자적 해석은 단지 성경언어의 통상적이며 관습적인 용법들에 따라 성경의 원래 의미를 기록된 그대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lt;/p&gt;
&lt;p&gt;&lt;br /&gt;문자적 해석은 글이나 말, 생각 등이 어떤 면으로 사용되었는지 모든 단어가 통상적인 용례에서 나타나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즉, 성경에서 &quot;유리&quot;라고 했으면 그것을 거울이라는 다른 의미로 생각하지 않고 기록된 그대로 유리라고 이해하는 것이며, &quot;피&quot;라고 했으면 그것을 희생이나 사랑이라는 다른 의미로 바꾸지 않고 실제적인 피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자적 해석은 때대로 문법적-역사적 해석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각 단어의 의미가 문법적이고 역사적인 사실과 연관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므로 문자적 해석은 문법과 문맥과 역사적 상황의 전후관계를 무시한 기계적인 문자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상징법이나 여러가지 수사법을 배제하지도 않는다. 상징, 비유, 예표 등은 모두 문자적 해석에서 통상적이고 평이하게 해석되며, 그것들은 문자적인 해석과 상치되지 않는다. 결국 비유나 상징에 있어 어떤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러한 표현에 문자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문자적인 해석에서 비유와 상징은 그 의미가 분명하게 나타나며, 그것이 독자에게 전해 주는 의미는 통상적이고 평이한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와 같이 문자적 해석은 '비유적' 언어, 즉 '상징들'이 성경에서, 특히 예언서들에서 사용된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영적인' 교훈들이 그 안에 진술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성경은 &quot;통상적으로&quot;, 즉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언어의 법칙에 따라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성경이 글자 하나하나에 영감받았다고 믿지 않는 학자들과 그렇게 믿는다고 할지라도 성경에 대해 자연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학자들은 문자적 해석을 배제하고 풍유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을 한다. 풍유적 해석은 성경 본문의 문자적 의미와는 관계없이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며, 성경이 말하려는 바는 무시되고 해석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은 부차적이고 해석자의 의도가 일차적으로 되어 버린다. 펜테코스트(J.D. Pentecost)는 풍유적 해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올바로 평가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quot;풍유적 해석방법은 성경을 연구하려는 것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고 그리스 철학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합하려는 요구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막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정통적인 성경해석의 자녀'가 아니라 '비정통적인 이단적 성경해석의 자녀'이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러한 풍유적 해석은 이교도들의 산물로서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 B.C.20-A.D.54)는 대표적인 풍유적 해석자이다. 그는 성경의 각 부분에서 &quot;표현이 이중적일 때, 이미 알려진 사실이 반복될 때, 단어들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 때...&quot; 등의 경우에 다른 뜻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창세기 22:11에서 &quot;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quot;라는 말은 &quot;아브라함이 내세에서 살 것이다.&quot;라는 의미라고 해석했으며, 창세기 2:21에서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든 것은 신화적인 설명이라고 해석했고, 출애굽기 33:1,3의 &quot;약속받은 카나안 땅&quot;은 &quot;육신으로 나타난 그리스도&quot;라고 했다. 결국 그에게는 문자적으로 &quot;우유&quot;였던 것이 풍유적으로 &quot;고기&quot;를 의미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대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필로 이후에 판태누스(Panteanus, A.D.180),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A.D.155-215), 오리겐(Origen, A.D.184-254),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등에게 이 방법이 전수되었는데, 이들 모두는 초기 성경변개의 절정을 이룬 사람들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오리겐은 &quot;Mr. Allegorism&quot;이라고 불릴 만큼 풍유적 해석을 했다. 그는 신약과 구약에는 모호하고 비이성적인 부분들은 물론 우화들과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가르쳤다. 한 예로 창조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이 실재했던 것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신화라고 했으며, 창세기 18장에서 천사들이 아브라함을 찾아간 기록 역시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출애굽기 1:18-22에서(이집트에서 산파들에게 사내아이들을 강에 버리라는 문맥에서) &quot;남자와 여자 아이들&quot;을 &quot;혼의 자연적이고 이성적인 기능들&quot;로, &quot;산파들&quot;을 &quot;구약과 신약 성경&quot;으로, &quot;남자의 씨&quot;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하늘에 가려고 노력하는 영적인 지식으로 각각 해석했다. 이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기 위해 아무런 성경적 근거도 없이 적당하게 의미를 부과한 것이다&lt;/p&gt;
&lt;p&gt;&amp;nbsp;초기에 풍유적 해석을 했던 사람들은 오늘날 계약신학자들이 &quot;구속&quot;, 즉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모든 초점을 그리스도에 맞추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비스러운 사실들이 모여 있는 것이 구약이라고 했다.&lt;/p&gt;
&lt;p&gt;&lt;br /&gt;이러한 생각에 따라 318명의 할례받은 아브라함의 종들의 숫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했다 : 318을 헬라어 알파벳으로 표시하면 T I H 인데, 여기서 T는 십자가의 모양이고, I H는 헬라어의 예수의 처음 두 글자라고 해석함으로써 318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어떤 하나에 자신이 부과하고자 하는 의미를 자의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풍유적 해석이다. 이러한 예는 해석하는 사람 만큼이나 많기 때문에 오늘날 행해지는 이러한 풍유적 해석의 예는 열거할 수조차 없이 많다.&lt;/p&gt;
&lt;p&gt;이렇게 초기 성경변개자들에게서 유래한 풍유적 해석은 니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대 바실(Basil the Great),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암브로스(Ambrose), 어거스틴(Augustine) 등에게 전수되어 이들 모두가 예외 없이 이 풍유적 해석을 했다. 특히 오리겐과 어거스틴 이후로 교계에 풍유적 해석이 넓게 유포되었으며 어거스틴은 이러한 해석으로 천년왕국이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영적으로 이미 성취되었다는 무천년주의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시기에는 루터나 칼빈을 비롯한 개혁자들은 풍유적 해석을 배격하고 문자적 해석을 했으며, 그들은 한 본문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한 가지 의미밖에 없음을 올바로 주장했다. 이와 같이 성경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지닌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즉 성경 변개자들과 성경의 옹호자들에 따라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도 차이를 보이게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gt;&lt;span&gt;문자적 해석을 해야 하는 이유&lt;/span&gt;&lt;/b&gt;&lt;/p&gt;
&lt;p&gt;&lt;br /&gt;&amp;nbsp;이미 성경의 기록과 연관해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즉 글자 그대로 해석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시했지만 이 시점에서 문자적 해석을 해야 하는 보다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lt;/p&gt;
&lt;p&gt;&lt;br /&gt;첫째, 문자적 해석은 언어 그 자체의 목적과 관습에 맞는 해석이다. 하나님께서 언어를 만드신 주된 목적은 인간과 교제하고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언어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교통할 목적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을 인간에게 전하기에 충분한 언어를 만드셨다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하며,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과의 대화와 성경 기록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언어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즉 하나님께서 언어를 만드신 그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충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자적 해석을 떠나서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를 알 수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 단어는 분명히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 단어가 하나의 특정 상황 속에서 사용될 때는 통상적으로 하나의 의도된 의미만을 지닌다. 이것이 지각있는 사람들 사이에 상식적인 의사소통의 원칙이다.&lt;br /&gt;화자나 필자가 말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자나 필자가 단어들을 주관적으로, 또는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통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이것이 곧 성경해석에서 전제되는 문자적 해석의 근거이다. 이러한 근거가 올바른 것은 성경이 수수께끼가 아니라 계시의 책이기 때문에, 즉 열려진 책이기 때문에 타당한 것이다.&lt;/p&gt;
&lt;p&gt;&lt;br /&gt;사람들은 어떤 글을 읽든지 읽는 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한다. 이것이 인간이 지닌 언어의 관습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언어의 기능기기도 하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 이외의 상징이나 비유나 은유, 또는 다른 형태의 표현은 늘 이차적인 것이다. 누군가 &quot;나는 학교에 간다.&quot;고 말하거나 글을 쓰면, 사람들은 그가 선생님과 학생들, 교실과 책상과 칠판이 있는 실제적인 장소에, 곧 학교에 갔다고 이해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여기서 &quot;학교&quot;란 &quot;배움과 학문과 지식&quot;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실제적인 학교에 간 것이 아니라 지식을 얻기 위한 순례를 떠난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그는 화자나 필자가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자기가 의도한 바를 말하기 위해서 단지 &quot;나는 학교에 간다&quot;는 말을 인용했을 뿐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경을 이와 같이 풍유적으로 해석하면 무지한 사람들은 &quot;야! 깊이 있고 영적이구나&quot;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와는 다르게 해석한 것이며, 해석자의 사사로운 견해를 영적 양식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 문자적인 해석이 요구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둘째, 문자적 해석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에 맞는 해석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은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quot;기록된 언어에 관한 동일한 약속&quot;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기록된 단어가 통상적인 뜻을 지닌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에 부합하는 문자적인 해석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째, 문자적 해석은 그 해석의 타당성을 보증받을 수 있는 해석이다. 만일 평이하고 통상적인 문자적 해석을 하지 않는다면 해석한 것의 타당성은 상실되고 만다. 만일 기록된 글자 그대로의 성경 본문이 없고, 또한 그에 대한 문자적 해석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그러므로 통상적이고 평이한 문자화된 기준이 없으면, 인간의 상상력이 초래할 수 있는 우화적 해석의 다양성은 상대적 진리를 낳게 된다. 성경에서 통상적인 의미 이외의 다른 의미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해석은 성경의 기록된 의도와는 관계없이 해석자가 그 의미를 마음대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며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을 낳게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넷째, 문자적 해석은 성경예언의 성취를 올바로 증거하는 해석이다.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구약성경의 예언들 - 탄생, 성장, 사역, 죽음, 부활 등에 관한 예언들 -이 모두 &quot;문자적&quot;으로 성취되었다. 신약성경에는 이러한 예언들이 비문자적으로 성취된 예는 전혀 없다. 이것은 문자적 해석을 강력히 지지해 주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재림에 관해서도 문자적 해석을 하는 것은 물론 성경 전체에 걸쳐 문자적 해석을 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gt;&lt;span&gt;문자적 해석과 올바른 적용&lt;/span&gt;&lt;/b&gt;&lt;/p&gt;
&lt;p&gt;&lt;br /&gt;&amp;nbsp;사람들은 해석하는 것과 적용하는 것을 혼동한다. 이는 영감과 감동을 혼동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영감과 감동의 구분이 중요한 것처럼 해석하는 것과 적용하는 것에 대한 바른 이해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제 문자적 해석과 올바른 적용을 위한 방법을 간단히 소개하려 한다.&lt;/p&gt;
&lt;p&gt;&lt;br /&gt;① 각 단어의 의미를 연구해야 한다. ②단어 상호 간의 문법과 관련성을 분석해야 한다. ③ 가까이 있는 문맥과 멀리 떨어져 있는 문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작게는 앞뒤 몇 절의 문맥에서, 크게는 한 장 전체나 그 성경 전체와의 관계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은 직접적인 문맥의 연구뿐만 아니라 성경대 성경의 비교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 &quot;문법적으로&quot;, &quot;문맥에 따라&quot;, &quot;성경은 성경으로&quot; 해석함으로써 위의 세 가지에 근거한 &quot;문자적 해석&quot;을 하는 것이 성경적이다.&lt;/p&gt;
&lt;p&gt;그러나 적용은 &quot;교리적 적용&quot;, &quot;역사적 적용&quot;, &quot;영적 적용&quot;을 나누어서 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① 교리적 적용은 성경의 모든 구절이 특정한 사람들(유대인, 이방인, 교회)에게, 특정한 이유로, 특정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적용하는 것이다.&lt;/p&gt;
&lt;p&gt;&lt;br /&gt;② 역사적 적용은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 역사의 어느 때에, 어디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 역사적 상황에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lt;/p&gt;
&lt;p&gt;&lt;br /&gt;③ 영적 적용은 모든 성경의 가르침이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기 때문에 성경의 모든 구절은 사람을 바르게 하거나 가르치기 위한 영적 교훈으로 적용하는 것이다.&lt;/p&gt;
&lt;p&gt;&lt;br /&gt;『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이는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소망을 지니게 하려 함이니라』(롬15:4).&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와 같이 성경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기본적으로는 교리적 적용을 하지만 영적인 적용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런데 사람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은 영적인 진리가 담긴 말씀을 그리스도인의 교리로 가르치거나 그 반대의 일을 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다 그리스도인의 교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세 가지로 나누어 적용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과 목사들은 영적 적용을 목적으로 풍유적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이 말씀하는 그대로 성경을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lt;b&gt;문자적인 해석의 열매&lt;/b&gt;&lt;/span&gt;&lt;/p&gt;
&lt;p&gt;&lt;br /&gt;&amp;nbsp;문자적인 성경해석은 성경을 &quot;기록된 그대로&quot; 믿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할 목적으로 언어를 창조하시고 인간이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의도하셨다는 사실을 기초로 하여 그 메시지를 분명하게 해석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다.&lt;/p&gt;
&lt;p&gt;&lt;br /&gt;문자적인 해석을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는 학자들은 성경의 일부는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일부는 그렇지 않게 풍유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풀러는 &quot;구약의 예언들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이 얼마만큼 적용되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나에게는 여전히 매우 당혹스런 문제이다&quot;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일관되게 문자적 해석을 하는 것이 그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에만 성경에서 &quot;예언된 대로&quot;, 또 &quot;기록된 그대로&quot; 알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또한 무천년주의자인 해밀턴(Hamilton)은 이러한 고백을 했다 : &quot;우리는 구약성경 예언에 대한 문자적 해석이 메시야의 지상왕국에 대해 전천년주의자가 그리는 바로 그러한 그림을 제시해 준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것이 구약의 약속들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에 기초하여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바로 그 메시야 왕국이었다.&quot; 이와 같이 헤밀턴은 만일 자신이 문자적 해석을 따랐다면 자신은 전천년주의자가 될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런 이유로 파인벅드(Feinberg)는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무천년주의자들의 주장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문자적인 해석은 성경을 &quot;기록된 그대로&quot; 믿게 함으로써 성경에서 구분해야 할 것들을 구분하게 한다. 즉 이 땅에는 서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고전10:32)과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 서로 다른 경륜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일정한 시기가 나뉜다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그러므로 세대주의의 문자적 해석은 단어, 개념, 사람, 경륜들 사이의 분명한 구별을 나타내지만, 구분하는 것과 통일하는 것은 모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대주의'는 성경을 올바로 나누고, 그것을 근거로 다시 성경 전체를 통괄하여 올바로 해석하게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관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해석의 원칙이며, 성경에 부합하는 해석이기 때문에 성경의 지지를 받는다. 다시 말해서 문자적 해석을 하는 것은 '세대주의'에 있어 근간을 이루며, 문자적 해석이 논리적이고 명백한 해석의 원리이기 때문에 '세대주의'는 그 정당성을 보장받는다. 그러므로 '세대주의'는 단지 신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을 올바로 읽고 해석하는 유일한 &quot;성경적 해석방법&quot;이며, &quot;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가장 잘 대변&quot;하는 것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자료/성경</category>
      <category>성경</category>
      <category>세대주의</category>
      <author>KWe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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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8 Oct 2020 09:27:5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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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원 받으셨어요? 말씀으로 점검해 봐요. 구원의 확증</title>
      <link>https://kbible.tistory.com/34</link>
      <description>&lt;p&gt;&lt;a href=&quot;https://youtu.be/rHFiPZgt_Mw&quot;&gt;https://youtu.be/rHFiPZgt_Mw&lt;/a&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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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caption&gt;&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구원은 감정이나 병고침이나 방언이나 기적이나 직분이나 착한일이나 봉사와 같은 것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배경음악 출처 유투브채널명 : 크리스찬BGM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1 : 예수우리왕이여 &lt;/span&gt;&lt;/p&gt;
&lt;p&gt;&lt;span&gt;링크1 : &lt;a href=&quot;https://youtu.be/5X9f5YtIx4k&quot;&gt;https://youtu.be/5X9f5YtIx4k&lt;/a&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제목2 : 지존하신 주님 이름 앞에 &lt;/span&gt;&lt;/p&gt;
&lt;p&gt;&lt;span&gt;링크2 : &lt;a href=&quot;https://youtu.be/v2tHM7Tecmw&quot;&gt;https://youtu.be/v2tHM7Tecmw&lt;/a&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음악사용을 허락해 주신 크리스찬BGM께 감사드립니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말씀/설교</category>
      <category>구원</category>
      <category>그리스도의피</category>
      <category>기독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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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예수그리스도</category>
      <author>KWe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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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7 Oct 2020 11:42:0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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